(3156)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23)38선 돌파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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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25 동란 발발직후 미국이 신속하게 해·공군지원을 표명하고 유엔 참전 결의를 주도한데 대해 대부분의 국가들이 갈채를 보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같은 움직임에 고마워하면서도 만시지탄의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50년 7월2일 서울에 와있던 미INS 통신의 「레이·리처드」 특파원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주미 대사관과 유엔 대표부에 보내 각처에 배포토록 했다.
"우리가 여러 차례 미국에 대해 군비지원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그 원조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것으로 오해하여 군비를 보내주지 않은데 대해 가슴 아프다.
한국문제가 유엔의 관심사로 남아있는 한 나는 절대로 무력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확약한바 있다.
오히려 북괴 측이 남한을 침범할 위험의 징조가 농후하다고 지적한 본인의 발언을 믿지 않았고 군사원조는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이와 아울러 임병직 외무장관은 7월4일자로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6월25일, 6월27일 안보리를 통과한 결의안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회원국들이 결의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한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통해 전투를 계속 진행할 결심을 만당에 천명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할 것을 알고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투쟁과 희생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유엔 헌장의 존엄성을 지키는 동시에 헌장상의 모든 원칙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믿고 이 원칙들이 유지되어야만 우리와 같은 모든 신생국이 각자의 존재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여기서 UN 안보리 결의 이후의 전세와 미군 증강 경위 및 38선 돌파문제를 정리해보자.
전세는 악화 일로 였다. 6월29일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애치슨」 국무장관, 「마셜」 국방장관 등과 구수 회담을 열어 한국 전쟁에 대한 미군 활동범위에 관해 결심을 내렸다.
첫째 38선 이북에서의 해군 전투활동을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맡김으로써 38선 이북의 군사 행동을 비로소 허용했다.
둘째 육군도 필요한 무대를 부산지역에 동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 후 「맥아더」장군은 급전을 보냈다. 전세가 불리하니 미군의 전투병력이 즉각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2개 사단 병력의 파병을 허가했다.
「오스틴」 미 유엔 대사는 6월30일 안보리에 이 사실을 통고했다. 그러면서 「오스틴」 대사는 유의해야 할 발언을 했다. 즉, 『모든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한국이 6·25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미 정부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아군의 반격전이 벌어져 38선 돌파문제가 생기면서 다시 부각됐다. 50년 9월17일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한지 2주일만에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계속, 38선에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7월19일 이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
『미·소 공동위가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소련이 북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한 38선은 건드릴 수 없는 경계인 것으로 대한민국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후원으로 수립된 북괴 정권이 38선을 파괴하면서 남침한 이상 이제는 38선이 존속할 이유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본다.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오스틴」 대사의 유엔 발언에 대해 이 대통령이 즉각 반발, 서한까지 보냈던 문제가 오래지 않아 아군의 38선 접근에 따라 작지 않은 쟁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도 7월말부터 낙동강교두보를 기점으로 반격작전을 핌으로써 전세가 호전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38선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8월에 들어서면서 이 논의는 더욱 활발해져 국무성은 두 갈래로 의견이 나누어졌다.
그 한파는 후에 국무장관을 지냈지만 당시 동북아 문제 담당차관보였던 「딘·러스크」와 그 해 6월19일 「덜레스」를 따라 한국에도 왔고 나중에 주일 대사를 지낸 「존·앨리슨」 동북아 국장으로서 이들은 38선 돌파 지지자들이었다. 38선은 이제 없애야하고 침략자를 격퇴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의 의견에 맞서서 기획 국의 「폴·니치」 등은 「조지·케넌」의 영향을 받아 「맥아더」로 하여금 유엔군이 38선을 넘지 않도록 한다는 태도를 표명토록 해야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국무성내에서도 38선 돌파 문제에 관해 찬반이 팽팽히 엇갈리는 데 대해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은 매우 긴장돼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치슨」 국무장관의 태도에 관심이 집중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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