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표 도둑 들끓어 골치 앓는 항공 회사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 비행기 표 도난사고가 날로 늘어나 국제 항공업계가 골치를 앓고있다.
비행기 표는 백지수표와 같아 누구든지 요령만 알면 필요 사항을 기재, 손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을 도둑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이탈리아·스위스·오스트리아·영국 등지에서 14명의 항공권 절도범을 체포하는 등 국제경찰(인터폴)도 항공권 도난방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좀처럼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에어프랑스 항공사만도 상당수의 비행기 표를 도둑맞아 4백만 프랑(약5천만 원)의 손해를 보았다.
인터폴이 지난 79년 적발한 도난 항공권은 약10만장.
국제 항공업계가 5천만 프랑(약64억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비행기 표 절도범죄는 10년 전부터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특히 「표준 항공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계 항공사의 피해가 많아 몇몇 회사들은 회사 운영에 커다란 구멍이 날 정도다.
항공권 전문 절도범들은 항공사나 여행사의 비행기 표 보관함에서 표를 훔쳐내 여러 갈래로 복잡한 국제 중계망을 통해 이를 팔아 치운다.
미국의 달라스에서 분실된 비행기표가 이탈리아의 밀라노의 한 학생단체에 무더기로 팔릴 수도 있다.
중개상은 도난 항공권에 완벽하게 기재 사항을 써넣은 다음 위조 서명이나 도장을 찍어 넘긴다. 구매자들은 보통 할인 가격보다 더 헐한 값으로 여행할 수 있어 좋다.
밀라노는 도난 항공권 거래의 유럽중심지.
탑승 항공기가 명시돼있는 비행기 표도 예외일 수 없다.
도난 항공권 소지자는 기분 내키는 대로 항로를 기왕이면 값이 많이 나가게 장거리로 적어 넣은 다음 여행 일정 변경 등을 구실로 여행사에서 표를 바꾸면 된다.
비행기 표를 노리는 전문 절도범들은 인쇄 공장에서 방금 인쇄된 항공권 몇 천장을 싣고 나오는 운반 차를 송두리째 납치, 항공사와 흥정을 벌이는 일도 있다. 비행기 표를 압류(?) 당한 희사는 범인들의 요구가 적정 선일 경우 이에 응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백지 위임」된 몇 천장의 항공권이 멋대로 세계를 날아다닐 때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항공권 도난사고에 대해 각 항공사들은 철벽같은 금고에 비행기 표를 보관하는 등 경계와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나 전문 절도범들의 검은 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에어프랑스는 각 지사와 여행사에 극히 제한된 필요량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까운 은행에 예치, 필요할 때 현금을 인출하듯 빼 쓰도록 지시하고 분실 항공권의 번호를 컴퓨터에 넣어 분실된 표가 사용되는 일을 막고 있으나 사정은 여전하다.
국제 항공 운송협회도 매달 세계 항공사에서 도난 당한 항공권의 번호 목록을 모든 항공사·여행사에 배부, 경계 강화를 꾀하고 있으나 문제는 일선 창구 직원이 표를 살 때마다 이를 일일이 대조할 시간이 없는데 있다.
결국 보다 효과적이고 적합한 항공권 발매 및 유통제도가 발견될 때까지는 관리와 확인 업무를 철저히 하는 수밖에 다른 묘안이 없는 노릇이다. <파리=주원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