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민화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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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림 (Grimm) 형제가 수집한 독일 민화집이다. 『신데렐라』 『붉은 모자』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공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은 모두 이 책에 들어 있다. 애독서를 그것도 한 권만 고르라는 것은 사실 겁나는 이야기다. 세상에 좋은 책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 한권을 고른 다음에는 다른 책은 일체 독서를 금지 당하기나 할 것 같은 동화적인 공포를 순간적으로 느끼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정을 다 고려한 다음에 그래도 한권만 들라면 이 『그림 이야기』를 들겠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은 국민학교 초학년 때이고, 보통 있는 유명한 것만 발췌한 판이 아니라 전화집이었다. 그 이후의 독서를 통해서 이만한 환상을 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카프카」의 이야기들은 나에게는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민화들이 그런 것처럼 「그림」 이야기에는 인간 생활에 대한 직관과 꿈이 살아 있다.
가끔 꺼내서 읽어본다. 혹시 그동안에 마술사들과 괴물들이 어디론가 떠나 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이다. 여전히 있다. 책장을 여는 순간에 그들은 긴 손톱을 뻗쳐 낚아챈다.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너무 신비한 그 마술의 세계에 사로잡히고 만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의 세계의 참모습이 가장 현실감 있게 비친 거울 속에 들어와 있다. 아마 여기서 출발해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여기에 돌아오는 것이 인간의 의식의 여행의 모습이지 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지어내는 이야기도 그런 빛깔을 띠어야 내 속에 있는 「그림」 이야기의 독자가 만족한다. 이 독자는 웬만해서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림」 이야기의 독자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Pant-heon사의 1976년 판 영어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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