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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5억弗 +α] 北송금에 현대 해외법인 총동원

중앙일보

입력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현대가 북한에 보낸 돈은 이미 드러난 5억달러 규모에서 크게 불어나고 있다.

특검이 본격화하면서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대북송금 규모와 경로가 하나 둘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당시 임동원 특보는 "현대가 5억달러를 보냈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으며,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도 이를 시인했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현대상선 미주본부와 같이 그간 알려지지 않은 그룹 계열사의 해외법인 등에서도 대북송금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졌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특검 수사가 진전되면 현대의 대북송금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북송금 규모=그간 감사원 등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대북송금 규모는 2억달러가 전부다. 현대상선이 당시 한국산업은행을 통해 4천억원을 대출받아 보낸 돈(2억달러) 이외에는 현재까지 관련자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그간 의혹이 제기된 ▶현대건설의 해외법인을 통한 1억5천만달러▶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의 1억달러 등에 대해서도 뚜렷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는 金전대통령과 현대의 鄭회장 측이 지난 2월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 5억달러를 보낸 사실을 우회적으로 시인한 것이 밝혀진 내용의 전부다.

이번에 3억달러가 추가로 드러남에 따라 현대그룹 주요계열사(상선.건설.전자 등)를 통해 북한에 보낸 것으로 의혹을 사는 돈만 8억달러 가량으로 불어난 셈이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당시 대북송금은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이 주도하면서 그룹 계열사가 총동원됐었다"며 "실제 북한에 보낸 돈은 10억달러에 이를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현 경영기획팀 사장)이 대북송금을 총지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2000년 벌어진 '형제간 경영권 분쟁'(현대사태) 때 정부.채권단 등으로부터 경질을 요구받았던 金본부장을 鄭회장이 끝내 사퇴시키지 않은 것은 이런 속사정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金본부장은 당시 구조조정본부장과 현대건설 관리본부장을 겸임하면서 그룹 자금을 총괄했다.

◇현대그룹 해외법인 총동원=현대는 북한에 돈을 보낼 때 우선 그룹 내 각 계열사의 해외법인을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의 미주본부(LA소재), 현대전자의 하이닉스 아메리카.하이닉스 저팬, 현대건설의 해외 법인 등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즉 국내에서는 체크되지 않는 그룹 내 해외법인에 있는 여윳돈 등을 모두 갹출해 북한에 먼저 보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대전자의 경우 이때 하이닉스 아메리카에서 8천만달러, 하이닉스 저팬에서 2천만달러 등을 각각 모아 총 1억 달러를 영국의 현대건설 비밀계좌에 입금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전자는 이와 관련, 최근 현대건설을 상대로 양수금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현대의 또다른 관계자는 "鄭회장과 金본부장이 직접 나서 돈 마련을 독려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6월 남북회담 직전까지 각 계열사의 해외법인에서 긁어 모은 돈은 목표치에 크게 미달했다"며 "이후 얼마 있다가 산업은행에서 4천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동원해 서둘러 4천억원을 현대상선 측에 대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북송금 알 만한 사람 모두 외국에=당시 대북송금에는 현대상선 미주본부의 박기수 전무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지난해 말 본사가 미주본부의 구조조정을 하면서 朴전무의 사표도 받았다.

朴전무는 그 뒤 현대상선의 해외법인 관계사로 LA의 하역전문회사인 CUT 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UT는 鄭회장 측이 그간 임금 등을 과다계산해 북한으로 돈을 빼돌리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朴전무는 대우그룹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鄭회장에 의해 특채됐다. 朴전무는 鄭회장의 보성고 동창이다. 그는 현대상선 미주본부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했다.

또 현대상선에서 당시 대북송금과 관련된 임직원들도 사건이 불거진 뒤 모두 해외로 발령났다.

당시 회계담당이던 박재영 전무는 지난해 말 미주본부장으로 발령났다. 또 기획담당이던 박남성 전무는 싱가포르로, 재정담당이던 김종헌 상무는 일본법인으로 잇따라 보냈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대북송금 전모를 아는 임직원은 현재 회사에 한명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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