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조재현 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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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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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위야(不爲也),

비불능야(非不能也).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 맹자(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

드라마 ‘정도전’ 주인공을 맡아 한동안 그 일생에 빠져 지냈다.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도전(1342~1398)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맹자(孟子)였는데, 극중 대사에 이 구절이 나왔다. 나이가 좀 들면서 저건 저래서 못하고 이것은 이래서 못해, 하면서 자꾸 뒷걸음질 치는 때가 많아졌다. 왜 못하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나 자신을 자각할 적마다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9월 17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제6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꿈이 생겼다. 이 영화제의 전야제를 대성동 마을에서 밤에 하고 싶었다. 국방부에 공문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한참 뒤 회신이 왔는데 ‘행사 불가’였다. 비무장지대가 한미연합사령부 관할이기 때문이란다.

 이장님을 모시고 고민을 얘기했다. “전 세계에 유일한 이 공간에서 평화·생명·소통을 주제로 한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농번기라 너무 바빠서 할 수 없다’면서도 슬쩍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우리 마을회관은 겨울이 되면 영화를 볼 수가 없어 아쉬운데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순간 내 입에서 “리모델링 하겠습니다”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을 주민의 영화관을 만들어 영화제의 시작을 거기서 알리자’. ‘불위야, 비불능야’.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가고 있지 않나, 움츠러들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고 싶은 구절이다. 조재현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