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맥주 마시며 구조 기다린 세월호 기관사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먼저 구출된 기관부 직원 일부가 구명조끼를 입은 채 캔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구조를 기다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1등 기관사 손모(58)씨는 2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재판에서 “(탈출하려고 세월호 3층 선실 복도에 모여) 박모(58) 기관장과 함께 캔맥주를 마셨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마시자고 했다”며 “격앙된 상태여서 다른 기관부 직원 객실에서 맥주를 한 캔 가져와 마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기관장)이 담배도 피웠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손씨 등이 캔맥주를 마신 것은 기관부 직원들이 기관장으로부터 탈출 명령을 받은 뒤 구명조끼를 입고 3층 복도에서 대기하던 도중이었다. 이들은 사고 해역에 도착한 해양경찰에 의해 오전 9시39분 제일 처음 구조됐다.

이들은 동료인 조리원 두 명이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탈출했다. 또 탈출 명령을 받고 선원 객실에서 빠져나와 3층 복도에 모이면서 바로 곁에 있는 승객 선실에는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았다.

2일 재판에서 손씨는 “당시 승객들이 어디서 어떻게 하고 있을지 생각해 봤느냐”는 검찰 질문에 “생각은 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런 문답이 오갔다.

“‘승객’이라는 단어를 꺼낸 사람이 있나.”(검찰)

“박△△ 조기장이 했다.”(손씨)

“뭐라고 했나.”

“‘승객들은 어쩌고 있나’라고 했다.”

“그런데도 승객이 있는 곳에 가지 않은 이유는.”

“판단착오였다.”

“가기 싫어서가 아니고?“

”판단착오였다.“

오전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가는 손씨 뒤로 방청석에서 ”캔맥주 사줄까?“라는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세월호 기관부 직원 중 박 기관장은 살인ㆍ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손씨 등은 유기치사장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