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가 강도 흉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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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손들어 강도다』-. 장난감 권총을 목에 들이대는 5세짜리 조카의 입에서 강도란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강도가 뭐냐』고 되묻자『칼이나 총으로 사람들을 무섭게 해 돈을 뺏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깜찍하다 못해 앙징맞다.
어린 조카의 무심한 장난 속에 서울 중곡동 은행 인질 사건과 재판을 받다 달아난 소매치기들의 탈주극이 문득 떠올라 씁쓸해진다. 장난감 권총과 진흙 수류탄으로 은행을 털려던 어리석은 범인도, 흉기를 마구 휘둘러 교도관들을 바지저고리로 만든 조직 소매치기단의 주범도 같은 세대인 20대 젊은이였으니 말이다.
『한탕해서 멋있게 살아 보려했다는 은행 강도의 허탈한 독백 속에서 젊은 층에 만연된 금전만능주의와 한탕주의가 엿보여 우울해진다.
탤런트처럼 잘 생긴 탈주 소매치기의 영상이 안방극장에 돋보일 때 또 그 젊은이가 서울에서 이름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영어·일어 등 5개 국어를 몇마디씩 말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매스컴의 보도에 「아까운 사람」이라는 측은함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같은 또래의 동류 의식 때문일까.
물질만능의 사회가 인간의 정신을 찌들게 하고 육체의 안락을 보장해주는 돈을 더 중한 것으로 만들었고, 이 돈을 구하기 위해 잔인할이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 것이리라.
요즘 학생들은 추악한 어른 사회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감수성이 많고 호기심에 가득찬 학생들이 냉소주의·찰나주의·한탕주의·물질 만능주의에 물들어 갖가지 범죄에 휘말리지 않을까 한 가닥의 불안감마저 느끼게 된다.
교단에 서서 사회 생활은 이렇게 해나가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해줄 수 없는 자신이 두렵기만 하다.
일을 한다는 기쁨을 모르는 체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구해 멋지게 살겠다는 허무맹랑한 젊은이, 사람끼리의 약속인 법의 굴레를 벗어나려고만 했던 젊은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이들의 범죄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한 탓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땀흘려 일하는 보람과참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깨우쳐주자.
모든 어른들이 교사가 되어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 자기가 책임져야한다는 것을 일깨우자.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천진무구한 눈빛 속에서 오래 전에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아야하며 어린이들이 어른 사회의 비리에 물들지 않도록 사회 환경을 개선해야할 것이다.
방미영
▲55년 서울 출생
▲78년 한양대 졸업
▲현재 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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