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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시청자 선택지 늘리는 방송 플랫폼 전쟁 … 한국은 밥그릇 싸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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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세계 방송은 플랫폼 전쟁 중이다. 채널 점유율 경쟁이 아닌 플랫폼 가입자 경쟁이 방송 산업과 정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래된 플랫폼인 지상파와 케이블이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면서 시장을 방어하는 가운데, IPTV가 인터넷 서비스와 결합된 상품을 제공하면서 가입자를 늘리고 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위성이 여전히 강한 나라가 있다.

 4대 방송 플랫폼(지상파·케이블·위성· IPTV)을 위협하는 새로운 움직임도 거세다. 거실에 놓인 TV 수상기를 무시하고 개별적으로 이동기기에 몰입하는 신세대가 증가하면서, 그들에게 인터넷으로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업자가 등장했다. 이밖에 지상파와 케이블 기술을 섞은 사업자가 등장했다 사라지기도 하고, 이동기기 제작자가 방송을 하겠다고 덤비기도 한다.

 지금까지 방송 영역에 울렸던 만트라(주문)는 ‘내용이 지배한다’였다. 프로그램 제작과 채널 편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프로그램 시청률과 채널의 인지도가 방송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있다. 시청자의 프로그램 선택지를 통제하는 자, 즉 플랫폼 사업자가 강자로 뜨고 있다. 시청률이 고만고만한 채널을 가지고도 가입자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번영하는 사업자들이 있다.

 영국의 유료방송 SKY는 독점적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중계권을 이용해 가입자를 유치해 왔지만, 사실은 할리우드 영화와 시트콤 채널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 구성을 통해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지상파 플랫폼은 30개의 무료 지상파 채널로 시청자를 유인하고 7개의 유료 채널을 섞어 준다. 이용료도 챙기고 광고도 챙기는 수법이다. 넷플릭스(Netflix)는 시청자에게 개별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는 기술을 이용해 기존 방송 플랫폼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내가 보기에 플랫폼 경쟁의 요점은 시청자에게 ‘다차원적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어떤 시청자는 만금을 주고라도 EPL 생중계를 보기 위해 프리미엄 위성에 가입하겠지만, 다른 이는 무제한 인터넷 결합상품 때문에 IPTV로 간다. 또한 어떤 이는 오래된 영화와 시트콤을 무한정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같은 이는 너절한 홈쇼핑 채널들이 없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플랫폼을 선택한다.

 우리나라의 방송 플랫폼 경쟁 구도가 기형적이다. 일단 지상파는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사업자가 없다. 이 때문인지 세계적으로 지상파 방송의 직접 수신율이 낮은 후진적 비효율성을 자랑한다. 유럽의 지상파가 다채널에 HD를 제공하면서 채널과 서비스 경쟁을 유발하는 현실과 대비된다. 지상파 플랫폼이 없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유료 플랫폼 사업자들은 긴장감이 없다. 채널을 강화하고 서비스를 고도화할 유인 동기가 적다. 케이블은 저가형 가입자 구도에 고착되어 홈쇼핑 채널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IPTV는 가입자 확대에 성공하고 있지만 얼마나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터넷 동영상(OTT) 사업자들? 말을 말자.

 플랫폼 사업자가 편성을 고도화하고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진정한 선택권’을 주는 날은 언제일까? 새로운 사업자에게 면허를 주느냐 마느냐, 지상파 채널 중계권을 얼마로 하느냐, 주파수 대역을 어떻게 나눠 먹을 것이냐 싸우느라 정신 없는 사이에 세계 방송은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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