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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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일은행 중곡동지점 권총강도사건의 전말을 매스컴을 통해 들으며 망연한 느낌이었다. 수십명을 인질로 붙들어놓고 『술과 고기를 가져 오라』고 능청을 떠는가하면, 『이런 구경 처음이지』라고 인질들을 놀리기도 했다는 뒷 얘기를 듣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소 영웅심리의 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한마디로 금전만능, 인명경시의 사회풍조와 한탕주의, 냉소주의가 우리사회의 지배적 분위기가 돼있는 것 같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사람의 목숨이며 부정하게 쥔 돈으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또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경찰에 적발된다는 것을 믿었다면 결코 이런 유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잇달지는 않을 것이다.
범죄자들의 심리를 살펴보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함께 또 한편 그들이 가정과 사회 어느 쪽으로부터도 『배신당했다』는 절망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
「아버지」고 「아들」이고 「동생」일 때는 감히 할 수 없었던 일을 그 같은 정신적 유대를 잃는 순간 태연히 저지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웃」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차마 못할 일을 「누구도 이웃일 수 없다」고 단정해 버린 순간 선뜻 저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사회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결국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살고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과 권력과 명예만이 온전할 수 있으며 잘못은 반드시 처벌을 받게된다는 사회질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우리모두가 「돈」의 주인으로서 「사람」을 인정하고 본연의 「가정」「이웃」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현대국가에 있어 정부의 1차 적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다.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고 발생했을 때 신속히, 완전히 해결하는 법치 적 측면은 물론 삐뚤어진 사회 분위기를 바로잡는 사회 교육적인 측면에까지 다각적인 대책이 아쉽다. 【김이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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