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주문대로 정보 빼낸 '맞춤형 해커'에 징역 1년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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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정보만을 골라 해킹해준 ‘맞춤형 해커’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한성수 판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신모(40)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신씨는 해킹 커뮤니티에서 ‘콰트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던 해커다. 신씨는 2007년 5월 게임 머니 환전상으로부터 "필리핀으로 가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해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이후 필리핀에서 터를 잡고 있는 ‘해킹 영업’을 시작했다.

신씨는 우선 2007년 9월 필리핀의 한 PC방에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고객센터 서버를 해킹해 관리자 계정과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공범 정씨는 이를 이용해 다음 회원 2만8896명의 개인정보를 빼냈다. 일부 회원은 아이디·비밀번호·이름·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집 주소와 전화번호, 신분증 사본까지 털렸다. 같은 해 10월 신씨는 다음측에 "15만 달러를 주지 않으면 고객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500만원을 뜯어낼 수 있었다. 다음 측이 추가로 돈을 주지 않자 다음 사이트 내 해커 커뮤니티에 일부 회원 개인정보를 올려버리기도 했다. 신씨는 2008년 5월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미스터피자의 고객 정보를 빼낸 뒤 임원진을 협박해 700만원을 받았다.

신씨는 업체에서 돈을 받은 뒤에도 해킹한 개인정보를 팔아넘겼다. 다음 회원 2만8896명의 개인정보는 100만원에 넘어갔다. 이후엔 자동차학원, 성형외과, 복지재단 등 인터넷 사이트 10곳에서 10만8000여건을 빼내 헐값에 팔았다.

신씨는 뛰어난 기술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필요한 정보를 골라 해킹해 주는 ‘맞춤형 영업’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 고스톱 게임을 하면서 홧김에 욕설이 담긴 e메일을 보냈는데 이를 삭제하고 싶다"는 의뢰를 받고 비밀번호와 아이디를 알아내 건네줬다. ‘전 남자친구가 연락이 안 되는데 뭐 하는지 알고 싶다’, ‘헤어진 전 여자친구의 근황을 알고 싶다’, ‘사망한 남자친구 블로그에 업로드 돼 있는 함께 찍은 사진을 삭제하고 싶다’는 주문이 들어오면 건당 50만원~80만원을 받고 비밀번호 등을 빼내 해결해 주었다.

한 판사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무차별적으로 침입해 개인정보를 취득했고 이를 영리목적으로 누설해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이어 "신씨가 이전에도 비슷한 범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도 "범죄 금액이 비교적 소액이고 일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신씨는 2011년 현대캐피탈 고객 175만여명의 개인정보를 빼낸 혐의로 지난해 8월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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