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에 곳곳에 무궁화 핀 까닭은…"공인된 자세 배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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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38번지 금융감독원 사옥 곳곳에 무궁화가 피었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처' 문패가 붙은 1층 정문부터 사람 키만한 무궁화가 방문객을 맞는다. 구내식당과 21층 옥상 등 실내외 곳곳에도 대형 무궁화 화분이 비치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으로 21층 옥상에서는 무궁화 화분을 더 들여 별도의 '무궁화공원'을 조성키로 했다"고 1일 밝혔다.

금융감독·검사 업무를 하는 금감원 곳곳에 무궁화 화분들이 이사 온 이유는 뭘까. 최근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온 최수현 원장의 지시 때문이다. 현장에서 강원도청이 주관하는 무궁화 전시회를 보고 온 최 원장은 “우리나라 금융 감독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금감원에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가 없는 것이 말이 되냐"며 "무궁화를 구해서 식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총무국에서는 급히 수소문 끝에 강원도청에 연락했고, 도청에서는 "의미가 있으니 무료로 기증하겠다"고 해 무궁화 화분 5점을 우선 기증받아 금감원 본원 곳곳에 비치하게 됐다.

최 원장은 평소 “금융권에서는 우리를 '갑(甲)'이라고들 하는데 ‘갑중의 갑’이 아닌 ‘갑다운 갑’이 되려면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공인으로서의 자세 배워야한다”고 강조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는 것이다. 특히 사회공헌활동 중에 현충원 방문은 신입직원과 경력직원들의 필수 코스일 뿐 아니라 원장도 스스로도 자주 찾는다. 이런 덕에 2012년 12월에는 현충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금감원은 최근 KB금융 제재로 불거진 논란과 정부의 개인 제재 권한 축소 정책 등으로 안팎에서 새로운 감독·검사 모델을 요구받고 있다. 핵심은 '갑의 위세' 를 부리는 대신 '갑다운 갑'으로서 금융시장의 건전성과 소비자보호를 챙기고, 제대로된 서비스를하는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옥에 놓인 무궁화가 조직원들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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