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카톡 감옥' 까지 등장한 끔찍한 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한꺼번에 수백 명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특정인에 대한 욕설과 험담을 올린다. 피해자가 내용을 보지 않으려 해도 휴대전화 알람이나 진동이 수시로 울려댄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될 정도다. 채팅방을 나가도 다수 이용자가 끊임없이 다시 초대한다. 채팅방에서 탈출할 수 없는 이른바 ‘카톡감옥’에 갇힌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청소년들의 대표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SNS상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가하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피해가 늘고 있다. 피해 유형도 다양하다. 카카오톡에서 집단 따돌림을 하는 ‘카따’, 떼를 지어 욕을 하는 ‘떼카’, 대화방에 초대한 뒤 한꺼번에 나가버려 피해학생만 남기는 ‘카톡방폭’(대화방 폭파)이 대표적이다.

 한국청소년연구원이 최근 전국 중·고등학생 4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7.7%가 사이버 불링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를 목격했을 때 교사나 경찰에 신고하는 비율은 5.2%에 불과했다. 오프라인에서 학교 폭력은 줄고 있지만 SNS에선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은 1일 SNS상의 집단 따돌림을 막기 위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다. SNS상에서 실시간 대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이용자의 동의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윤 의원은 “현재는 대화방 초대를 거부할 수 있는 장치가 없지만 동의절차를 신설하면 사이버 따돌림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사이버 불링 현상이 크게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우선 피해학생이 가해학생들의 위협에 못 이겨 대화방 참여에 동의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피해자 동의가 나중에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만 낮추게 된다. 어떤 문제를 누르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풍선효과’에 의해 다른 신종 수법이 생겨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법 개정과 함께 사이버 불링도 폭력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에게 교육시켜야 한다. 또 SNS 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업계의 동참을 유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