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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122)|「대증주」책동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2년 5월 파동을 전후해서 증권회사들은 대증주를 둘러싸고 매수 측과 매도 측으로 나뉘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필자가 세운 통일·일흥증권을 비롯해서 동명·대양·삼악증권 등을 주축으로 10여개 사가 매수 측을 형성했다.
그리고 송대순 씨의 대한증권, 오계선 씨의 태평증권을 비롯한 20여개 사는 매도 측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매수 측 회사들이 대증주 등을 마구 사들여가자 매도 측도 공세로 나왔다.
특히 매도 측은 내가 준비한 자금이 다해봐야 7천만∼8천만환 정도밖에 안될 것으로 판단하고 물량공세로 나왔다.
송대순 씨는 실물도 없이 1억 주 이상을 공매하여 정산차금 때문에 대한증권이 문을 닫을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오계선 씨는 이사회의 결의도 없이 한국증권금융 보유 주식까지도 팔아버려 증시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았었다.
그는 또 개성사람 윤모씨가 맡긴 대증주 5천만 주를 본인의 승낙도 없이 팔아버렸다가 후일 높은 시세로 판상하느라 동아일보사나 고려대학재단까지 흔들린다는 소문이 증시에 파다했었다.
그 정도로 매매쌍방간의 책동전은 치열했다.
나는 여기서 당시 증권을 사고 팔던 증권업자들의 생리와 유형을 말해볼까 한다.
증권을 끊임없이 사들여서 주가 상승에 따른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상당한 자금부담도 따르지만….
증권을 사들여야 만이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다. 필자나 김윤도·서극형 씨 같은 사람은 이 부류에 속한다.
반대로 팔지 않고는 못 견디고 증권을 사놓으면 불안해서 밤에 잠도 못 자는 형이 있다.
송대순·강성진·김동만·김희관 씨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증시에는 이상과 같이 크게 두 가지 형의 사람들이 있어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하튼 증권을 대량매매하는 투기사들은 우선 배짱이 든든해야하며 자금의 뒷받침과 정보가 빨라야 한다.
일본 격언에 증권하는 사람은『도미머리와 꽁지까지 욕심 내지 말고 가운데 토막만 취하라』는 말이 있다.
너무 욕심을 부려서 팔고 사는 적당한 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어쨌든 4월 들어 뛰는 줏가는 장안의 화제가 됐고 이 돈 저 돈 할 것 없이 증시에 몰려들었다.
4월말께는 총거래고가 1천1백88억 원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나타냈다. 그중 대증주가 매매량의 50%를 약간 넘는 6백25억 환을 차지했다.
4월말 수도대금은 모두 1백28억 환이었다.
매수 측인 통일·일흥·동명 등 3개 증권회사는 68억5천만 환의 인수자금이 필요했다.
증권회사들이 4월말 수도결제를 앞두고 자금난으로 허덕였다. 필자도 자금의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다른 회사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이에 증권거래소는 4월30일에 3개 시중으로부터 50억환의 융자를 받아 대한증권 등 35개 증권회사에 수도결제자금조로 나누어줌으로써 4월말 수도결제를 끝냈다.
5월 들어서도 필자는 대증주 등을 사들여 갔다. 줏가는 계속 뛸 수밖에 없었다. 18일쯤에 서재식 증권거래소이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대로 가면 정산차금을 못 내 대한증권을 비롯한 유력한 매도 측 11개회사가 문을 닫을 것 같다고 했다.
11개 증권회사가 영업 정지되고 회사 문을 닫아버린다면 증권파동이 일어나고 국채파동 때보다 더한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됐다.
방법이 없겠느냐는 필자의 말에서 이사장은『내일부터 매도 측 회사에 정산차금의 납입을 면제하고 실물이 있을 때만 팔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이것이 큰 화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러한 결정은 매도 측엔 크게 유리한 반면 매수 측을 불리한 입장에 몰아넣고 말았다.
청산거래제도에 있어서는 30%의 대용증권이나 현금을 매매증거금으로 거래소에 내고 매매를 취결하면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정산차금을 거래소에 납입해야 한다.
줏가가 전날 시세보다 올라가면 매도 측이 그 차액을 내고 반대로 떨어지면 떨어진 만큼의 차액을 매수 측이 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매매쌍방은 매일 같이 거래소를 통해 정산차금을 주고받는 셈이었다.
이러한 상황아래에서 파는 측은 실물만 있으면 정산차금도 내지 않고 무제한 팔 수 있는 반면 사들이는 측은 현금을 내고 사면서 정산차금을 못 받게 되어 결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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