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꺾인 산유국|제네바 OPEC회의 언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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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실상 가격 카르텔의 역할만을 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처음으로 그 역할에 제동이 걸렸다.
OPEC총회가 유가인상을 보류한 것은 73년 제1차오일쇼크이후 9년만의 일이다. 이는 바로 현재의 세계석유시장은 셀러즈 마키트에서 바이어즈 마키트로 변모되고 있음을 뜻하는것이기도 하다.
OPEC가 유가문제에서 더이상 횡포(?)를 부릴수 없게된 가장큰 이유는 석유소비국들의 석유소비절약이다. 각국은 지난 수년간 산유국의 고유가정책에 맞서 석탄·원자력·태양열등대체석유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한편으론 전례없는 구두쇠작전으로 한결같이 석유소비를 줄였다. 올들어 그효과가 나타나 석유는 세계적으로 남아돌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하루평균 2백만배럴이 남아돈다는 계산이다. 산유국들은 원유값을 올리기는 커녕 그동안 제멋대로 붙였던 프리미엄을 앞다투어 내리기까지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체제고수도 석유과잉공급에 크게 기여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이라크전으로 이란·이라크의 석유수출이 중단되자 서방경제의 파산을 막기위해 원유생산량을 하루9백50만배럴에서 1천30만배럴로 늘렸다.
문제는 이란·이라크가 석유수출을 재개, 그 수준이 하루 2백만∼3백만배럴에 이르고 있는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생산량을 이란·이라크전전의 수준으로 환원시키지않고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총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과연 감산할 것인가가 최대의 초점이었는데 결과는 감산보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보류한것은 OPEC를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아래 운영해 나가기위한 전략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자국의 급속한 근대화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재정수입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집안사정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 나타난 OPEC회원국전체의 분워기는 OPEC의 권익을 지키기위해 각국이 감산을 단행, 더이상 유가를 떨어뜨리지 말자는 것. 사우디아라비아도 처음엔 이같은 분위기에 말려 유가2달러인상과 감산을 고려했으나 다음 총회때까지 일단 이를 보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인상·감산은 다른 산유국의 10%감산이후의 국제원유가격추이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10여개국이 산유량을 10%줄일경우 원유공급량은 현재의 하루 4천8백30만배럴수준에서 4천6백만배럴수준으로 약2백만배럴이 줄어든다. 이는 서방소비국의 하루수요와 거의 맞먹는것이다.
따라서 6월1일이후의 원유값동향에따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산유량정책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OPEC10여회원국의 10% 감산에도 불구하고 국제원유가격이 지금과같은 안정세를 유지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인상, 감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라비안라이트가 현재의 배럴당 32달러에서 34달러로 2달러 오를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의존도가 59%에 이르고 있는 한국경제는 적지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부계산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값을 2달러 올릴경우 국내석유가격은 4.29%의 인상요인을 안게된다. 동력자원부는 5%의 인상요인이 생기지 않는 한 국내가격은 조정않겠다는 방침이나 타산유국의 감산이 유가에 미칠 영향등을 합산하면 또한차례 홍역을 치러야할 가능성도 크다. <김두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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