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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9)제73화 증권시장-강성진<제자=필자>(4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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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증권시장 관계기관가운데 대한증권업협회가 있다.
협회는 거래소가 설립되기 3년전인 47년 증권 구악부란·묘한 이름의 단체에서 비롯된다.
송대정씨를 중심으로 한 증권을 아끼는 동호인들의 모임이었다고나 할까.
그후 53년11월 대한증권업협회로 정식 설립인가 된지 올해가 28주년이 된다.
증시사가 말해주듯 6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파동으로 증권회사의 부심이 심했다.
어제까지 활동하던 회사가 내일이면 문을 닫고 오늘은 또 새로운 회사가 생겨났다.
62년5월파동을 전후해서는 60사까지도 됐던 회원사들이 숱한 풍파를 겪으면서 60년대 말부터는 30사미만으로 안정을 이루고있다.
협회는 회원간의 침목, 투자자의 보호, 기업자금의 직접조달과 산업민주화촉진을 위한 유가증권의 인수 및 공모에 관한 업무의 협의 조정을 통해 경제건설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청산거래 시절 책동전이 자주 발생할때엔 협회는 일종의 완충지대로, 중립지대로서 실매 쌍방의 이해대립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증시운영의 중요문제가 총 회전에 이사회에서 거론되는 경우가 많아 l년임기의 임원선출에는 회원의 관심이 높았다. 또 회장선거에는 과반수득표자가 없어 결선투표까지 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회원의 반으로 구성하는 이사회제도가 오히려 회원간의 친목을 해치는 결과가 되어 필자는 전회원이사제를 제안했다. 모두가 찬성을 하여 74년부터는 현재의 전회원이사제로 바뀌었다.
협회는 증권시장의 정책과 제도개선 등을 정부에 많이 건의해왔다.
74년 세법개정 때의 일이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에는 투자신탁회사의 수탁증권이익분배금에 대해 10%의 소득세를 징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배당 및 이자소득세가 5%의 과세인데 유독 수탁증권수익금은 소득세가 10%라니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협회는 당시 국회재무위원회(위원장 신형직 의윈)에 이의 시정을 건의했고 다행히 위윈회에 출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김규면회장, 백경복상근부회장,(현회장) 필자 (부회장) 등 3사람은 자료를 챙겨 국회에 들어갔다.
백부회장이 재무위원회에서 설명을 했고 필자가 여러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했다
증시에 관한 문제점과 대책을 협회 관계자들이 국회에서 직접 설명한 첫케이스가 아닌가 기억된다.
다행히 우리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동 법안의 세율은 당초 10%에서 5%로 수정되어 재무위를 통과했다.
당시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양투자신탁회두의 오늘날과 같은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78년도의 세법개정때로 기억돤다.
대주주에 대한 배당소득세 50%공제제도를 전면 삭제한다는 정부안이 발표됐다.
마침 줏가는 78년7월을·괴기로 하여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을 때였다. 참으로 충격적인 악재였다.
줏가는 계속 떨어졌으며 투자자들은 아우성이었다. 업자들은 협회를 중심으로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일부 회원사는 증권업면허를 자진 반납하고 휴장 결의까지 해야한다는 강경론까지 내세웠다.
증시는 연일 들끓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어느 날 전국경제인연합회이사회에 참석했다.
의외로 세법개정안내용의 중요성에대해 별로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물론 일부 이사들은 기업과 대주주에 미치는 영향과 증시의 앞날에 깊은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지만….
다음날아침 대책회의가 도오뀨호텔에서 소집됐다.
필자는 이회의에 참석하여 세법개정안의 내용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 증시와의 관계등을 소상히 설명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경제4단체장을 포함한 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재무부와 협회와의 간담회, 신문등의 좌담회에 나가서 필자도 열심히 토론에 참가했다.
협회·상장회사협의회·경제4단체등의 끈질진 대정부·국회건의가 받아들여져 정부의 원안이 수정된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다.
현재 회장단의 회장은 회원사대표가 아닌 외부인사로, 부회장은 회원사대표로 구성하고 있다.
회원사회장제도가 업자간에 오해를 낳을 소지가 많고 방대한 협회일과 본업을 함께 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필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76년부터 바뀌게 됐다.
협회는 시황방송, 증권시장지발행등 홍보업무, 정부와 학원사의중재역할업무도 많지만 투공해산 후에는 증권회사는 물론 종합금융·한국투자금융 등으로 구성된 인수업무 협의회의 운영으로도 바쁘다.
연중 개설되는 증권연수원의 운영 등 보이지 않는 노력도 계속되고있다.
60년대에 재정이 극도로 핍박했던 협회는 협회회관건축기금50억원을 마련하는 등 70년대중반부터는 재정형편이 나아졌다.
빠르면 금년 가을에는 회관건축기공도 가능 할 것으로 보여져 대견스럽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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