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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 이긴 각고…공부하며 가장 노릇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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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대 중학생-. 남들은 불구라고 손가락질하고 동생뻘 급우들이 따돌리지만 5월의 동심처럼 즐겁기만 하다. 가난과 불구를 딛고 일어서려는 불우 청소년들의 생활 터 한국청소년학생회(서울 용두2동231) 이곳 회원들은 생계가 어려워 스스로 벌어 공부해야 하지만 신문팔이 저금통장을 마련해 집을 사고 소년가장 노릇을 하기 때문에 보람찬 나날이다. 서울 용두 시장 대건 빌딩 3층에 들어선 70여 평의 생활 터에는 기숙사(35평)와 도서실(20평) 등이 들어서 불편이 없다.
현재 이곳 회원은 27명. 고등학교에 3명, 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 3명이 다니고 10여 명이 중·고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의 생활은 군 내무생활처럼 엄하다.
새벽 6시 기상해 청소를 끝내면 7시부터 10시까지 도서실에서 의무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아침밥은 틈을 내 근처 지정 식당에서 사 먹는다.
대부분이 야간학교에 다니지만 일부학생은 일반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상오 9시 전에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 간다.
도서실자습이 끝나면 상오 10시부터 하오 5시까지 주로 주간지를 팔기 위해 서울 도심과 변두리 다방과 식당·버스터미널을 뛴다.
이곳 회원 중 안치민군(21·서울 동대문 재건 중l년·서울 길음동568의91)은 이 생활터에서 가난과 불구를 이긴 인간승리의 주인공.
소아마비로 오른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언어장애로 고통을 겪는 안군이지만 5년 동안 신문팔이로 8식구가 편히 살 집을 마련했고 꿈에 그리던 중학교에 들어갔다.
안군의 불행은 7년 전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 안기택씨(46)가 전역과 함께 퇴직금을 털어 차렸던 가게가 사기꾼에게 넘어가면서 비롯됐다.
사업에 실패한 안씨는 술타령으로 세월을 보냈고 어머니는 호떡장수로 8식구의 생계를 꾸려야 했다.
안군이 한국청소년학생회에 가입,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간지롤 팔기 시작한 것은 16살 때.
이곳에서 안군은 처지가 비슷한 동료들과 엄격한 단체생활을 하며 일정한 수입을 얻게돼 자립의 길을 닦았다.
매일 하오 4시부터 10시까지 명동일대가게 30여 곳을 돌며 파는 주간지는 60∼70여권. 재수가 좋은 날이나 주말 등엔 1백 권이 넘게 팔리기도 한다.
한 권을 팔 때마다 안군에게 돌아오는 수익금은 1백50원 정도.
안군은 이렇게 번 돈을 한 달에 20만원씩 은행에 꼬박 꼬박 예금해 지난 4월 7백만원의 목돈을 만들었다.
지난달 24일엔 1천3백만원으로 길음동 언덕에 대지26평·건평13평 짜리 집을 마련, 판자 집 셋방살이를 청산했다.
집을 마련하는데 든 1천3백만원 중엔 안군이 저축한 7백만원이 큰 몫을 차지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안군은 올 봄에 서울 창신동에 있는 동대문재건중학에 입학, 신문을 팔러가기 전 5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6년만에 시작한 중학공부다.
안군이 자립한 이 생활터를 거쳐간 불우 청소년은 모두 8백여 명.
68년12월 불우 청소년 13명을 모아 출발한 이 학생회에서 회사중역·육군 영관급 장교·학교교사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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