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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같은 … CJ 이재현식 투자 발목 잡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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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달 24일 한국영화 최초로 누적관객 1600만명을 돌파한 영화 ‘명량’이 경제에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블록완구 매출이 3배로 늘고,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이순신 장군쌀’의 판매가 20% 이상 늘고 ‘이순신 장군이 드신 진도 멸치’라는 광고 문구가 나올 정도다. 지역 경제도 들썩이고 있다. 다음달 9~12일 전남 진도대교 일대에서 ‘명량대첩축제’가 열린다. 전남 완도·고흥 등 이순신 장군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지역은 앞다투어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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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경제적 효과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에 근거해서 계산해봤다. 관객수 1600만명을 기준으로 봤을 때 스마트폰(삼성 갤럭시S5) 약 60만대를 생산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관객 1인당 영화표 가격을 평균 9000원으로 보고, 총 매출액에 영화산업의 생산유발계수와 부가가치 유발계수를 적용하면 약 4000억원으로 나온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제조업보다 훨씬 컸다. 스마트폰의 12배, 자동차의 9.5배 수준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이동기 교수는 “문화콘텐트 사업은 제조업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며 “무형의 간접효과까지 감안하면 ‘명량’의 경제적 가치는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쓰고 있는 명량은 이 영화를 배급한 CJ그룹에게도 오랫만의 호재다. 그러나 정작 26일 기자가 만난 관련 임원은 “앞으로 명량 같은 ‘CJ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어려울 것 같다”며 한숨 쉬었다. 140억원을 투입한 ‘국제시장’이 올 연말 개봉하고 나면 당분간 대작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임원은 “명량처럼 투자액이 200억원이면 손익분기점이 관객 650만명, ‘설국열차’처럼 450억원이면 1500만명인데 어떤 전문경영인이 결단을 내리고 투자할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이재현(54) CJ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 투자가 사실상 동결됐다는 것이다. 200억원이 들어간 ‘제7광구’, 130억원을 들인 ‘R2B’ 등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명량 프로젝트’가 2012년 무산될 위기에 있었는데 “글로벌 시장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승부해야 한다”며 이 회장이 밀어붙였다고 했다. 이 임원은 “2년 전 결정이 지금 성과가 나오고 있는데, 그동안의 투자 부재가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걱정”이라고 했다. 엔터테인먼트 부문 뿐만이 아니다. CJ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주 그룹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경영위원회에도 투자 안건 자체가 아예 올라오질 않았다”며 “각 계열사가 현상유지는 겨우 하지만 그룹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CJ그룹의 ‘오너 부재’ 상황은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인다. 수감 여부와는 별개로 이 회장의 건강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이달 14일 항소심 법정에서 본 이 회장은 옛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다리는 앙상하게 마르고 머리카락도 듬성듬성했다. 재판 3시간 내내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목도 못가눴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수액 두 팩을 계속 맞았고, 법정에 서울대병원 의사가 동행해 그의 상태를 살폈다. 피고인석에는 멸균수병과 손소독제가 있었다. 작은 상처를 통해서도 감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염도 바짝 깎지 못한 상태였다. 지난해 신장이식수술 이후 면역억제제를 투입하는데 이것이 근무력증을 동반하는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CMT)병과 맞물려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70~80kg이던 몸무게가 48~49kg를 오간다고 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이 회장을 진료한 적이 있는 이동형 부산 연세내과 원장은 “면역억제제를 투약하는데다가 10kg이상 빠졌으면 폐렴 같은 감염증에 굉장히 취약할 것”이라며 “한치 앞을 못보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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