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로댕 박물관 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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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람이 얼마나 비천해질 수 있는가를 집시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고 반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 가는 로댕의 생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싼 여비를 들여 「파리」까지 가서 로댕박물관을 둘러보고는 본전 뺐다고 자위했으니 이건 속물의 얄팍한 타산심리 탓일까? 그가 너무나 위대해서였을까?
그는 르네상스이후 신과 권위(왕실·귀족)에 얽매인 인간 모습을 조각해온 아카데미즘에 감연히 도전, 인간을 모든 예속에서부터 풀어놓아 버렸다.
불우했던 환경 탓으로 비교적 활동이 늦은 그는 『청동시대』(1876년)를 발표, 강력한 비난을 받은 후 계속 기성관념에 충돌해 나갔다. 그후 『세례자 요한』(1880년)과 「발자크」시리즈(1888년)를 발표, 센세이션과 함께 커다란 물의를 자아냈다.
그는 한 무더기의 점토를 주물러 살아있는 언어와 생명을 불어넣었으며 인간본연의 분방성과 고뇌, 그리고 육성도 저며 넣었다. 그의 조각이 갖는 면과 요철, 근육의 꿈틀거리는 리듬은 빚과 그늘의 효과를 크게 비약시켜 너무 살아 움직인다는 비난을 받아왔다니 정말 우스운 노릇이다.
우리에게 낯익은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즐겨 다루던 테마로 『지옥문』의 많은 인상 가운데도 끼여있고 별개작품으로도 어려 점 있었다.
여하튼 회화에 짓눌려오던 조각이 「로댕」이후 회화와 대등한 위치로 대접받게 됐다니 그의 위대성을 짐작할만하다.
현관을 들어서면서부터 숨막히는 긴박감과 벅찬 감격으로, 박물관을 나오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모두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글·그림 정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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