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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9)<제 73화>증권시장(17)|초창기 증권시장|이현상(제자=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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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초창기 증권시장은 한마디로 국채시장이었다고 헤도 과언이 아니었다.
56년3월 증권거래소가 문울 연 이후 61년까지의 거래량을 봐도 국채가 차지한 비중이 77%나 되었다.
당시의 주식회사라고 해야 간판만 그렇게 걸었다 뿐이지 모두가 가족회사요, 주식의 발행조차 하지 않는 법인조직이었고 보면 주식을 공개해서 증권시장에 상장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질 때였다.
따라서 초창기 증시는 주식시장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손쉽게 언제든지 사고 팔 수 있는 국채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래소 개설 첫 해인 56년만은 오히려 주식거래가 국채 거래보다 많았는데, 이는 해방이후 사장되었던 일부 묵은 주식과 청산거래 위원회의 소유 포는 귀속 주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발족되면서 새로이 상장되었던 주식들을 보면 조흥은행·저축은행·상업은행·전업은행 등 4개 시중 은행과 기업으로서 경성방직·남선전기·조선운수·해운공사·조선공사 등이었고 그밖에 거래소의 출자 증권과 연증의 것들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중에서 경성방직을 빼놓고는 모두 귀속기업체이거나 국영 기업체들이었기 때문에 주식거래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자연 주식이 한군데로 몰려 움켜쥐고 있었고 설령 사고 싶어도 보물이 없어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한 때가 허다했다.
그러한 반면에 국채는 정부가 전시재정으로 끌고 나가느라, 또 전쟁이 끝나고서는 복구사업을 벌이느라 매년 계속해서 찍어냈으니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심하게 말해 발에 걷어채는 것이 국채였다.
게다가 국채를 강제 인수하다시피 해서 떠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헐값으로 팔아 넘겼으니 투자자 입장에서 본다면 고리채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노릴 수 있었다.
건설회사들이 입찰 보증금으로나 쓰려고 국채를 사 모았다가 나중에 국채를 팔아서 번 돈이 건설공사로 변 돈보다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국채에 대한 투자는 비단「꾼」들만이 아니었다. 여유자금이 있는 학교재단·보험회사, 심지어는 은행들까지 앞을 다투게 되었고47개나 되었던 증권회사들도 이것으로 영업을 유지해나갔다.
열기가 점차 심해지자 실물거래로는 성에 차질 앓았다.
휴지취급을 받는 것이 어느새 물량이 부족해질 정도였다.
장의 분위기도 단순한 투자 이윤보다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쪽으로 흘렀다.
투기의 조짐이요, 무리의 시작이었다.
거래방법도 실물거래보다는 청산거래가 활기를 띠면서 흥청댔다. 당시의 청산거래는 1개월짜리의 당한과 2개월짜리의 선한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월말 수도일에 가서 실물과 대금을 절제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수도일이 되기 전에 마음대로 되사고 팔아 그 차액만을 따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잘만하면 밑천 없이 한 밑천 장만하지만 자칫 상투잡는 날이면 졸지에 패가망신을 면치 못했다. 개장이후 6년 동안 실물 거래액이 24억원이었는데 비해 청산거래는 58억원에 달했다는 것만 봐도 장세가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주식거래를 활성화시키는 방책으로 한때 조선맥주와 수도극장 주식을 상장시키기도 했으나 역시 여건의 미숙으로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국채시장으로 .절름발이증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담 한 토막-. 필자는 거래소 개장당시에 거래소 출자 증권의 상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때만 해도 상장주식 수가 워낙 적어 울며 겨자 먹기로 허용했던 것인데, 후일 증권파동 때 거래소출자주식이 말썽의 주 대상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여간 가슴 아픈 일이 아니다.
잠시 시장대리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흔히들 증권 시장하면 생각하는 것이 시끌벅적하게 요란한 손짓을 해대는 시장대리인을 연상케 된다.
국외자의 눈에는 마침 광대놀이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손가락 끝 하나로 시세가 올랐다 내렸다 한다.
거래소 개장을 앞두고 6개월 전부터 이들 시장대리인을 양성했으므로 입회장 운영에는 빌 어려움이 없었다.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신속한 거래를 해내려면 상당한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불쑥 시장대리인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당시 증권업계가 거래소개장 6개월 전부터 이들을 양성했을 정도로 열성들이었고 용의주도했음을 부기하기 위해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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