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실한 중간계층이 있어야 사회안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바쁜 아침시간에는 시간도 확인할 겸 뉴스도 들을 겸해서 대개는 라디오를 켜놓고 출근준비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 아침뉴스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날의 기분도 많이 좌우되게 마련이다. 명랑한 소식이 많은 날은 하루의 시작도 밝고, 어수선하고 우울한 일들이 많이 전해지는 아침이면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 역시 무겁고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 며칠간은 정말 뒤숭숭한 뉴스가 많다. 무슨 물가가. 혹은 요금이 얼마만큼 인상된다는 뉴스쯤에야 이미 면역이 된 터이지만, 미국에서의 대통령 저격 뉴스에 놀란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데, 이번엔 동남아 지역의 이웃나라인 태국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태국의 정국이 또다시 어수선해 지리라는 뉴스가 전해진다.
도대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왜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자주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하여는 설득력 있는 절명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인간들의 문제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정신문제를 해결해 추는 명약이 못된다는 평범한 이치를 재삼 확인할 뿐이다.
한데 태국에서의 잦은 정변 뉴스를 듣고는 언뜻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있다. 모든 세상일들이 그러하듯 이번 일도 간단하지 않은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라고 짐작이 된다. 물론 태국이라는 나라의 지정학적인 특진이 한 이유일수도 있다고 짐작이 된다. 그러나 과연 태국의 지정학적 특징이 그 나라의 정치·사회적인 불안에 얼마만큼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지는 전문가적인 식견과 분석이 요구되겠기에, 나와 같은 문외한은 감히 언급을 피하겠다.
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감하게 남겨지는 인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사회의 심한 빈궁의 격차다. 갖가지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거대한 옛 사원과 궁전, 그들 주변의 초라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민가와의 대조에 과거와 현재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지배받는 자간의 거리를 직감할 수 있었다.
태국의 상류사회는 그들이 갖추고 있는 지적·물질적 수준이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뒤짐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의 잦은 정치·사회적 불안이 지도층 부재에 연유하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사회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지배받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간의 관계가 양극화되었느냐, 혹은 양극의 완충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충분한 중간계층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크게는 한 국가가, 작게는 한 조직체가 건전한지 그렇지 못한지가 결정되어 진다고 생각된다.
현대사회에서의 많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강요와 복종의 관계가 아닌, 타협과 조화의 관계로써만 가능하다고 믿어진다. 일방적인 강요와 복종의 방법이 혹시 잠시동안은 효율적으로 보여질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아닌, 새로운 문제만을 제기할 뿐이다.
이와 같은 문제 해결 방법의 차이에서 우리는 민주제도와 독재제도의 우열을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이와 같은 타협과 조화의 구심점이 바로 건전한 중간계층이라고 생각된다.
즉 경제·사회적 의미의 중간계층의 존재는 가진 자와 지배자에 대하여는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통해 일방적인 독주(호른 강요)를 방지하고. 못 가진 자와 지배받는 자에 대하여는 일종의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본(모델)의 역할을 함으로써 이들의 성취 의욕 등을 자극하여 결과적으로 타협과 조화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된다.
한 사회가 잦은 격변을 겪는다는 것은 곧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해결의 방법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나 대립에 의해 해결하려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방법의 사용은 결국 타협과 조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건전한 중간계층이 충분히 존재하지 못한데서 더욱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아침에 전해진 태국의 정변 뉴스를 듣고, 새삼 과연 그 나라에 충분한 중간계층이 건재하고 있었던 가롤 되새겨 생각케 된다. 【(필자=경희대교수·신문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