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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패배한 KB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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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미 기자 중앙일보 정당출입기자
경기도 가평 백련사에서 22일 재도약 결의를 한 KB금융 임영록 회장(왼쪽)과 이건호 행장. [사진 KB금융]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

‘泰山鳴動鼠一匹(태산명동서일필)’. 태산을 흔들 만큼 난리법석을 떨더니 겨우 나온 건 생쥐 한 마리. 금융권 안팎에서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결론을 보고 있는 시각이다. 그나마 생쥐라도 잡았으면 다행인데 사태는 더 꼬였다. 권위를 인정받아야 할 금융 당국은 체면을 구겼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두 수장이 이끌 KB금융도 격랑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KB금융의 검사와 제재 과정에서 음모론이 판쳤다. 금감원은 지난 5월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 문제가 불거지자 바로 검사에 나섰다. 2주간 검사 후 중징계 사전통보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금융권에선 “주전산기 교체 관련 내홍,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카드 고객정보 유출, 국민은행 주택채권 횡령 등이 잇따랐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자 ‘괘씸죄’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평소 낙하산만 믿고 말 안 듣는 KB 경영진을 금감원이 손보려 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어설픈 개입은 감사원의 개입을 부르는 자충수가 됐다. 국민카드 정보 유출 책임은 애초 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미묘한 사안이었다. 신용정보법을 적용하면 KB 경영진에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나 감사원 지적대로 금융지주회사법을 따르면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이를 사전에 금융위와 금감원이 충분히 조율하지 않은 채 중징계를 예고했다가 되레 감사원에 역공을 당한 셈이다. 금융위는 뒤늦게 분사 당시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추가로 제기했 다.

 징계를 결정하는 제재심의 불투명한 구조도 불신의 대상이다. 현재 제재심은 전체 9명 중 6명이 민간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3명씩 위촉한다. 결과적으로 검사도, 심판도 금융 당국이 하는 꼴이다. 여기다 민간위원 대부분이 ‘관피아(관료+마피아)’나 ‘연피아(금융연구원+마피아)’와 엮이다 보니 물밑 로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이번 KB 경징계 결정의 이면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구명로비가 판을 쳤다”고 지적했다. KB금융에도 혹독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벌써 국민은행 사외이사진과 이 행장의 감정 대립이 재연될 조짐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 등 민형사소송을 제기하고 임시주총 소집도 청구할 계획”이라며 두 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넉 달을 끌어온 KB사태에서 승리자는 없고 모두가 치명상을 입은 채 패배자로 전락했다. 그나마 우리 금융산업과 감독체계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 바닥까지 드러냈다는 게 이번 사태에서 얻은 단 하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