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준서 만드는 어린이「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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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KBS 제1TV의『하나 둘 셋』은 글자와 숫자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유아교육「프로」의 하나다. 인형과 노래와 고사 등을 곁들인 여러 가지 시각적 방법을 동원, 꽤나 다양하게 신경을 써서 만드는 그 노력은 인정해 줄 수 있지만 과연 이것이 어린이「프로」로 성공적인 것이냐는 회의적이다.
예컨대『미』자를 가르치는데「미술」,「미끄럼」「미역」등「미」자와 관련된 많은 예시들을 가능하면 한꺼번에 전달하려는 욕심과, 어떨 땐 숫자까지 동시에 가르치려는 내용의 포화상태를 보여 수용 층인 어린이들이 얼마만큼 분명히 하나라도 익힐 수 있을까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다.
심지어『비』자의 경우는「비탈」을 가르치면서 미끄럼틀을 보여준 것이나,「비누」를 역시「미끄럼」에서도 써먹은 것은「세트」의 미비나 구성자의 연상작용 한계를 느낄 수도 있다.
대상「프로」에서 그 수용대상의 수준이나 소화능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제작은 제아무리 의욕이 높고 그 기획의도가 좋아도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린이「프로」는 어린이다워야 한다는 논리에서 본다면 지극히 어른 기준의 전개에다 어린이가 소도구로만 등장하는「프로」가 어린이용「드라마」물인데 그 가운데서도『개구쟁이 철이』같은 것은 숫제 어른들도 어렵게 쓰는 대사가 종종 그들의 용어 속에 끼어 들고 있으며, 모든 얘기의 출발이 어른의 사고범주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건 작금의 어린이「프로」가 저지르고 있는 커다란 오류라고나 할까.
전설 같은 얘기지만 민방들이 한참 시청률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무분별한 외국의 폭력수사 물로 비난을 면치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느낌을 오늘날의 KBS에서 받는다면「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1TV의『기동순찰대』는 그렇다 치고 미국에서도「폭력」으로 문제가 되었던 제2TV의『스타스키와 허치』는 무슨 의도에서 매주 수요일에 방송하는 것인가?
살인 등을 주로 다뤄 온 국내수사 물도 이제 방향전환이 요구되는 판에 공영 KBS가 이래야만 오락 속의 교양으로 구색이 맞는 건지 궁금할 뿐이다.
신상일<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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