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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체력·담력 키워 장사를 꿈꾼다|마산시 회원동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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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샅바를 움켜쥔 팔뚝에 동아줄 같은 힘줄이 불끈 솟는다.
바윗덩이처럼 두 다리를 버티고 납작 허리를 굽힌 채 어깨를 맞댄 모습은 용호상박 의 형.
『으랏찻차!』휘영청 굽었던 허리가 바싹 곤두서며 「배재기」를 하니 상대장정의 두 다리가 허공에서 자맥질을 한다.
허리샅바를 뒤로 젖히며 다리샅바를 앞으로 당겨 「재치기」로 메다 끊자 황소 넘어가는 진동이 모랫바닥을 울린다.
씨름은 우리고유의 민속경기. 잔잔한 기교보다 건장한 체력과 담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씨름은 어찌 보면 미련할 정도로 소박한 멋이 있다.
때문에 줄다리기·차전놀이·그네뛰기·널뛰기·윷놀이·거북놀이·두레놀이 등 숱한 민속놀이 중에서도 씨름은 순박한 우리네 민족성을 가장 잘 나타낸 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씨름에는 「왼씨름」 「오른씨름」의 두 종류(72년 대한체육회 산하 씨름협회에서 「왼씨름」으로 통일)가있다. 샅바를 오른쪽 다리에 걸고 오른손으로 상대허리샅바를 잡는 게 「왼씨름」이고 「오른씨름」은 그 반대. 함경남북·평안남북·황해·경상남북·강원·충청남북 등10도가 「왼씨름」을 했고 경기·전남북도가 「오른씨름」을 했다고 기록되어있다(체육문화사 간 「한국의 씨름」).
경남마산은 바로 「왼씨름」의 부흥지. 지난 8년 동안 전국 씨름계를 석권한 김성률 장사 (35)의 고향인 마산시 회원동은 근세씨름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출신의 흘러간 장사만도 김성수·모희규·김형식씨 등 20여명.
경남대 실내체육관-. 매일 하오 3시면 「제2의 김장사」를 꿈꾸는 60여명의 예비장사들이 모여든다. 대학생을 비롯, 중·고교생, 솜털이 보송보송한 국민학교 어린이까지 무명샅바를 쥐고있다.
마산국교 l년생 이찬세군(7)은 형님들 틈에 가려 보일둥 말둥 하지만 벗어 젖힌 상체는 딱 벌어진 어깨나 알밴 팔뚝이 여간 당차 보이지 않는다. 오른다리 허벅지에 샅바를 매고 사타구니 밑으로 빼낸 뒤 허리 뒤로 한바퀴 돌리고 다리에 맨 샅바에 다시 끼어 앞으로 접어허리샅바 안쪽으로 끼워 올린 뒤 느긋이 당겨보는 샅바 매는 동작도 제법 의젓하다.
『마산서만 씨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오랫동안 많은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다보니 다른 곳보다 이 지역 청소년들이 씨름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키1백82㎝, 80㎏의 거구인 사범 김 장사는 고향동네 젊은이 치고 샅바한번 매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땀을 뻘뻘 흘린다.
김성률 장사가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69년 제23회대회 때 장사부에서 첫 우승하면서부터였다. 마산의 씨름「붐」도 이때부터 일기 시작했다.
그해부터 77년까지 김 장사는 각종대회를 제패하는 무적함대였고 우승부상으로 받은 황소만도 1백50여 마리에 이르고 있다.
『우승을 하고 고향에 들아 오면 친지와 주민들이 징·꽹과리·북·장구 등으로 농악을 울리며 소를 타고 푸짐한 대접을 받았지요.』우승자에게 농우를 주는 것은 예부터의 전통. 당시 씨름선수들이 대부분농민이었고 농사를 부지런히 지으라는 뜻에서 소를 상품으로 주었단다.
씨름은 한문으로 각저·각력·각희 등으로 쓴다(최남선의 『조선상식』풍속 편). 고구려의 고분 각저총의 벽화에 씨름하는 장면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씨름놀이가 있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씨름의 기술은 공격의 「메치기」와 방어의 「되치기」. 공격에는 다시 「배재기」 「엉덩배재기」 「재치기」 「돌려치기」 「회목받치기」 「호미걸이」 「공중던지기」 「안다리걸기」 「안다리후리기」 「덧거리」 등 14기가 있고 방어에는 「맞배재기」 「뒷샅바잡고 바깥다리걸기」 등 10여기가 있다.
『씨름은 다른 경기와 달라 성격이 느긋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섣불리 대들다간 백전백패지요.』때문에 씨름하는 사람 치고 성질이 팔랑개비 같은 사람은 없다고 김 장사는 말한다.
그래서 연습 전에 좌선30분이 이곳 도장의 규율이다. 김 사범은 『벼룩이 물어도 꼼짝 않는 엄한 좌선을 시키고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전국소년씨름대회에서 우승한 성동춘군(13·마산중1년)은 『김 사범님의 가르침에서 씨름이 잔기술의 승부가 아니라 힘과 인내심의 싸움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지난해 소년체전 중등부 우승자인 심재혁군(16·마산중3년)은 『수양이 안되면 씨름의 사술 만든다』며 마산의 씨름은 정신수양을 통한 정통씨름임을 강조한다.
김장사의 소원은 고향마을에 씨름전문도장을 세우는 것.
77년 국고에서 1천만원의 보조금으로 「김성률 기념 씨름체육관」(가칭)을 세우려했으나 일부 지주들의 외면으로 땅을 구입하지 못했다.
노모 천기출씨와 부인·장남(3) 등 네 식구가 대지60평, 건평20평의 집에서 살고있다.
한달 수입은 경남대강사료와 친구사업을 도와주며 40여만원. 도장에 찾아오는 60여명의 후배들에게서는 씨름계의 전통에 따라 1원 한 장 받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
육식보다 채식을 오히려 즐긴다는 김 장사는 얼마 안 되는 수입이지만 시합을 앞두거나 연습을 열심히 하는 후배는 주머니를 털어 보신을 시켜준단다.
부인 박뉴희씨(27)는 70∼72년 사이 그의 호적수였던 박승환씨(31·당시 영남대선수)의 여동생.
『전용체육관만 지으면 후배양성은 물론 씨름을 국기로 발전시킬 수 있을 텐데….』일본「스모」계에선 지금도 「프로」선수로 오라는 유혹이 계속되고있다.
『이 땅의 농우를 1백50마리나 타먹은 놈이 이 땅에 봉사해야지 어딜 갑니까.』고향 땅에 씨름을 정착시킬 때까지 한눈팔지 않겠다는 그는 한 떼의 조무래기들이 몰려오자 다시 샅바를 죄며 산덩이 같은 몸을 일으킨다. 【마산=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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