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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든든한 ‘백’ 명품 부럽지 않구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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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14면

1 DIY 공방에 전시된 해외 빈티지 핸드백.

‘잇백’의 종말은 오래된 얘기다. 가방에서 ‘대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가치 소비’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내 멋에 고르고 내 방식으로 메는 가방들이 거리를 누빈다. 나만의 가방을 직접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하나 더 보태자면 라이프스타일 분야 전반에 손맛을 강조하는 DIY 바람이 분 것도 때를 같이한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핸드백박물관 ‘백스테이지’

메가트렌드까진 아니어도 핸드백 DIY는 입소문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문화센터 위주로 개설됐던 강좌가 이제는 개인이 운영하는 가죽공방 곳곳에서 마련된다. 심지어 인터넷에선 동영상 강좌를 보며 혼자 만들 사람들을 위한 키트도 판다. 가방 제작 경험이 있는지, 원하는 디자인이 정해져 있는지,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쏟을 수 있는지 등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다.

그 중에서도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핸드백박물관 ‘백스테이지(Bagstage)’는 꽤 눈여겨볼 공간이다. 이 건물은 해외 유수 명품 핸드백을 ODM(공급자생산)방식으로 만들어 온 시몬느에서 세웠다. 오픈 당시 박은관 회장이 핸드백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만큼이나 박물관·갤러리 말고도 DIY 수업을 마련했다. 손재주 없어도, 공예엔 생판 초짜라도 환영이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핸드백을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2 ‘bagstage’ 건물 지하 3~4층을 터서 만든 가죽샵과 DIY 공방.
3 이 곳에선 500여 종 가죽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4 DIY 강좌에서 샘플이 되는 핸드백들. 5 2~4명이 참여하는 강좌는 거의 일대일 강습이다.

500여 종 가죽 중 마음대로 골라 제작
건물 깊숙이 지하 3~4층을 튼 복층 공간에서 들어서면서부터 후각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각종 동물 가죽 냄새가 장소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 준다. 벽면마다, 선반마다 가죽 더미가 그득하다. 소가죽·양가죽은 물론이고 버펄로·악어·애너콘다 등이 망라돼 있다. 종류로는 500여 가지, 물량으로는 4000장쯤 된다고 한다. 말 그대로 가죽 백화점이다. 그중에서도 아래층 벽면에 걸려있는 길이 4m 짜리 애너콘다 가죽과 호랑이 무늬를 프린팅한 대형 소가죽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격대도 3만 원대 양가죽부터 100만 원대 악어가죽까지 천차만별이다. 이 모든 것이 전문 업자가 아니고서야 쉽게 보지 못할 광경인데 이유가 있다.

시몬느는 27년간 DKNY·마이클 코어스 등 수많은 브랜드 제품을 도맡아 생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장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조각이 남게 마련. 공방은 그것들을 공수해 일반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수강생의 경우 어떤 가방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면, 그 다음으로 여기서 가죽을 바로 고른다. 다른 어느 공방보다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가죽을 택할 수 있고, 초보자의 경우 직접 성수동·신설동 등 가죽시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공방 측의 자랑이다.

가죽 끝단 처리가 가방의 완성도 결정
수업에 앞서 가장 궁금한 건 어떤 가방을 만들 수 있는가다. 보스턴백부터 쇼퍼백·클러치·호보백·서류가방·백팩 등 모두 15가지의 샘플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초보자 과정이기 때문에 기존 패턴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몇몇 공방에서 해외 브랜드의 카피 제품을 만드는 것과 달리 이 곳의 샘플들은 시몬느 디자인팀에서 별도 제작한다고 한다.

샘플들을 보다 보면 과연 이걸 한 달(주 1회, 3시간씩) 안에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물론 가죽 공예에는 아무 경험도 없다는 가정에서다. 30여 년간 핸드백 제작 현업에서 일해 온 송덕구 실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웃었다. 클러치는 1회 수업에도, 쇼퍼백은 3회 정도면 충분하단다. 패턴과 장식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핸드백은 크게 네 가지 단계로 제작된다. 우선 패턴을 용지에 따라 그리는 것이 첫 단계. 그 다음으로 이를 가죽에 대고 다시 본뜬다. 안감도 여기에 맞춰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커팅할 땐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 여분을 넉넉히 두는 것이 포인트. 세 번째 단계로 가죽 연결 부분들을 붙인 뒤엔 가죽 끝단을 처리한다. 얇은 붓으로 약물을 바르는 과정인데, 이를 얼마나 매끄럽게 하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가방 손잡이를 제작해 붙인다. 가죽 재봉의 경우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려면 펀칭으로 구멍을 내고 다시 꿰매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송 실장은 “처음 배우는 이들도 80%의 완성도를 보인다”면서 “직접 만드는 재미도 재미지만 핸드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아는 기회도 된다”고 설명했다.

수강생은 대부분 주부와 인근 직장인, 그리고 패션 전공 학생들이다. 남성 수강생도 10% 정도 되는 데 주로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려고 오는 이들이 많단다. 주말 수업의 경우 한 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다.

● 1개월 과정으로 하루 3시간, 일주일에 한번 수업이 진행되며 수강료는 20만원. 5명 이상 신청시 20% 할인이 가능하다. 문의 02-3444-0739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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