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술원의 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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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 「아카데미」가 요즘 느닷없이 논란과 시비의 대상이 되고있다.
그것은 법률적으론 입법회의가 심의중인「문화보호법」개정안이 몰고 온 파문이지만, 우리의 학·예술계가 늘 무사안일 속에 그야말로「보호」되어온 상황에서 갑자기 몰아닥친「된서리」라는 의미에서 심각한 충격이라 하겠다.
현재의 학·예술원이 각각 임시총회까지 열면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이에 이 법 개정안은 입법회의의 문공위를 통과하여 본회의심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단계에 이르러 우리 학·예술계가 직면한 문제가 결코 대수롭잖은 일이 아니며 우리 문화사회에도 적잖이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생각해볼 계제에 이른 것 같다.
대체로「플라톤」의「아카데미」에서 출발한「아카데미」는 18세기까지 「대학」에 상응하는 교육연구기관이었다. 하지만 그후에 그것은 과학·문학·예술의 개발·증진을 위한 학회·연구소로 변모되고 있다.
때문에 오늘에는 한편으로 학문·예술발전의 권위와 보호를 목적으로 한 일면과 다른 한편으로 특수한 연구의 사명을 가진 기관의 성격을 갖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그 어느 경우 건 이번 문제된「문화보호법」의 개정안처럼 회원정년제나 회원의 정회원·준회원구분 같은 어설픈 발상은 없으며, 오히려 외국의 유명인사를 초빙하여 회원으로 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 법이 이미 밝혔듯이 우리의 경우 학문과 예술의 최고권위기관인 학술원과 예술원은 『학문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고 학자·예술인을 우대하기 위하여』설치되고 있다.
그 기능도 과학·예술가의 대표기관으로 중요사항의 심의·자문·건의에 국한되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6년 임기회원과 종신회원으로 운영되어왔으며 또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다.
학·예술원은 사실상 이 나라 학문과 예술의「권위」존중과 「보호」라는 뚜렷한 목적가운데서 존립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학문과 예술에 일생을 바쳐온 원로학자·예술인들의 업적과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을 보호함으로써 나라의 학· 예술 진흥· 발전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뜻이 분명한 것이다. 그런 만큼 학·예술원은 어느 의미에서 문화의 상징기구 일뿐 연구를 담당하는 현장은 아니다.
이 같은 사정을 알게되면 여기에 회원의 「정년제」를 두어 70세 이상의 원로는 물러나야한다든가, 혹은 물러난 사람 가운데 학술원 30명과 예술원 15명의 명예회원을 둔다든가, 또는 젊은층으로 5백명, 1백50명의 준회원을 둔다는 등 복잡하고 궁색한 제도수지를 기하려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할 것이다.
한마디로 「정년제」는 「권위」와 「보호」라는 법의 근본취지를 외면한 규정이며, 다수의「준회원」설정은 학·예술원의 상징적 의미를 흐려놓고 한창 연구에 전념해야할 중견학자·예술가를 일찍부터 노쇠화 시키는 발상이라 하겠다.
수백 명이나 되는 젊은 학자·예술인들을 모아놓고 무슨 심의와 자문과 건의를 하게 하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뿐더러 이 시점에서 「문화보호법」을 개정해야할 뚜렷한 이유도 발견하기도 어렵다. 현재의「문화 보호법」이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할만한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태여 이 법을 졸속 개정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문화란 것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문화보호법」이라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지를 모으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서 혹 유누가 있으면 개정하는 것이 순리라면 임기도 며칠 안 남은 입법회의가 섣불리 이 법개정을 다룬다는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그런 때문에 우리는 이 법의 개정에 반대하는 학·예술원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며 차제에 그 소속만은 문교부장관의 관장에서 보다 상급기관으로 격상시키는 편이 오히려 타당한 것으로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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