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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수에 사람들이 쓰러져요…인간 김성령의 매력이죠

중앙일보

입력

인터뷰하는 동안 종종 들리던 “제 나이가 오십이 코앞인데…”라는 말이 참 생경했다. 배우 김성령. 1966년생들과 같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소위 ‘빠른 67’이니 과연 오십이 코앞이다. 하지만 TV와 스크린에서 보이는 그의 비율 좋은 몸매와 세심하게 관리한 스타일은 영락없이 시계바늘이 거꾸로 도는 모양새다. 드라마 ‘추적자’(2012) ‘야왕’(2013) ‘상속자들’(2013) 등을 거치며 그는 30대 여성들에겐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로망을, 40대 이상 여성들에겐 ‘저렇게 나이들 수 없는데 어쩌나’하는 절망을 안겨줬다. 여세를 몰아 올해는 영화 ‘역린’(혜경궁 홍씨 역)과 ‘표적’(형사반장 역)에 출연했고 ‘표적’이 제 67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은 덕에 레드카펫에 서는 짜릿함까지 누렸다.

여기서 그쳤다면 팬들이 ‘소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뜻의 ‘소성령’이란 별명까지 붙여주진 않았을 터. 재벌집 딸 혹은 사모님 역할을 내세운 화려하기 그지 없는 패션, ‘중년 여성들의 워너비(닮고 싶은 사람)’라는 수식어에 기대지 않고 그는 최근 무대 도전을 감행했다. 이달 막을 내린 연극 ‘미스 프랑스’에서 1인 3역을 맡아 석 달간 구슬땀을 흘린 것. ‘미스 프랑스’는 김성령의 열연에 힘입어 한 달 연장공연, 평균 객석점유율 80%, 관객 2만명 돌파라는 호응을 얻었다. 뒤늦게 찾아온 전성기를 즐기며 중년 여배우의 지평을 한 뼘씩 넓혀가고 있는 그를 20일 만났다.

‘그 나이에’ 무대에 선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연극 '아트'(2005) '멜로드라마'(2008) 등을 하면서 청심환을 날마다 먹었지만 객석만 바라보면 머릿속이 하얘졌던 시절의 두려움. 그는 아직도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의 대사를 몽땅 잊어버렸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무대에 서보자고 결심한 건 연극이 제겐 너무나 겁나는 분야였기 때문이에요. 영원히 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을 이번에야 말로 넘어서자 결심했어요. 연습할 당시 극장 위층에선 이순재·나문희·신구 세 분 선생님이 ‘황금 연못’ 연습을 하고 계셨어요. 그 얘기를 듣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죠. 세상에, 그 연세에 그런 열정이라니. 그 분들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감동적이잖아요. 거기서 힘을 많이 받았죠.”

‘미스 프랑스’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히트한 코미디를 원작으로 했다. 김성령이 맡은 역할은 미스 프랑스 출신으로 미스 프랑스 선발위원회 위원장인 플레르, 플레르와 흡사하게 생긴 호텔 종업원 마르틴, 스트립 댄서이자 플레르의 쌍둥이 동생인 사만다다. 이중 플레르가 미스 프랑스들의 누드사진 촬영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말을 잊어버리고 ‘외계어’를 하는 설정이 이 연극의 포인트. “옴니아 갤럭시 노트 쓰리 바카스나 비타오베크(비타500) 벨리댄스가 차차차”라든가 “무좀에 라미실스, 에스티 로더 록시땅에 루이 뷔통 짝퉁이야”하는 식으로 브랜드 이름을 대충 조사와 섞어 만든 기상천외한 대사인데 김성령의 천연덕스러운 푼수 연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얼굴이 아플 정도로 웃었지만 그에겐 고난의 행군이었다. 총 101회 공연 중 절반이 넘는 56회가 그의 몫이었고 공연 시작 전 2개월을 온전히 연습에 바쳐야 했다.

“항상 정해진 연습시간보다 두세 시간 먼저 가서 발성연습을 했어요. 연극을 전문적으로 하는 배우들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매일 10시간 넘게 대학로에서 살았어요. 영화 홍보가 겹쳤을 때였는데 메이크업 하면서도 중얼중얼, 대기하면서도 중얼중얼, 자나깨나 대사만 외웠던 것 같아요.”

관객들은 김성령의 실수에 특히 즐거워 했다. 의미와 맥락이 없는데 분량이 워낙 많다 보니 대사가 입에서 엉켰다. “대사가 워낙 웃기니까 저도 종종 웃음을 못 참았어요. 그런데 제가 웃으면 객석에서 난리가 나요. 원래 배우가 실수를 하면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는데 의아할 정도로 관객들이 좋아하는 거에요. 나중엔 제가 실수를 안 하니까 오히려 안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제가 사극에서 중전 역을 많이 해서 완벽하고 도도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실수를 하니까 그게 더 친숙한 느낌을 줬던 것 같아요.”

드라마 출연 제의를 물리치고 5개월간 연극에만 몰두하기로 한 건 극단 수현재컴퍼니 조재현 대표 때문이었다. “저한테 중년 여배우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했어요. ‘네가 이번 공연을 잘 해내서 앙코르 공연 때 네 나이대 여배우가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그 말에 마음이 완전히 흔들렸죠. 사실 저랑 더블캐스팅된 이지하씨는 더블캐스팅될 레벨이 아니에요. 경력이 20년 넘는 중견 배우거든요. 그만큼 제 나이 또래 여배우가 할 역할이 없는 게 슬픈 현실인 거죠. 마지막 공연 때 이순재 선생님이 보러오셨는데, ‘좋은 연극배우 하나 생겼어’라는 덕담에 정말 뿌듯했어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울까" 생각

잘 알려진 대로 김성령은 1988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대한민국 공인 미녀가 됐다. 미스코리아의 주가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던 시절이다. 그는 곧 강우석 감독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주연으로 발탁됐고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눈부신 출발이었지만 이후 행보는 의외로 조용했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 출연을 꾸준히 이어갔지만 주연급으로 올라서진 못했다.

-처음부터 연기에 뜻을 둔 건 아니었나요.

“직업인로서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이 전혀 없었어요. 얼떨결에(?) 미스코리아가 됐으니까요. 일이 들어오면 막 짜증냈어요(웃음). 그땐 서른 살 되기 전에 결혼해서 현모양처로 살려고만 했죠. 결혼해서 남편이 사업을 하는 부산에 내려가 3년간 시댁에서 살았는데, 첫 비행기 타고 서울 가서 촬영하고 마지막 비행기 타고 내려오는 식으로 하는데 너무 힘든 거에요. 그때 한 골프웨어 전속모델을 했는데 재계약하자는 것도 거절하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몰라요.”

-그때 열심히 할 걸 후회될 때가 지금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럼요. 그런데 그때 열심히 뛰었으면 지금 인기가 더 많을 텐데 하는 후회가 아니에요. 할 수 있었을 때 더 배우고 더 경험하지 못했다는 반성이죠. 외국 생활도 1년 정도 하면서 외국어도 배우고 경험의 폭을 넓혔더라면 한 인간으로서 훨씬 발전했을 텐데 그게 아쉬워요.”

-일 욕심이 본격적으로 생긴 건 언제부터인가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큰 아이가 지금 중학 1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 4학년인데 애들이 크면서 내가 엄마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면 제일 자랑스러울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육아와 살림도 분명 값진 일이지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때부터 연기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대학도 편입하고(경희대 연극영화과) 석사 과정도 하고(한국외국어대 경영대학원 마케팅학).”

-욕심과 현실의 간격이 힘들진 않았나요.

“물론 사람이니 욕심이 앞서죠. 난 배우로 이게 끝인가 절박한 마음이 들 때가 왜 없었겠어요. 그렇게 매달리다 보니 지치게 되고 어느 순간엔 다 내려놓게 됐어요. 요새 사람들이 저한테 소속사 바꾼 다음부터 잘 나간다, 쌍꺼풀(수술) 한 다음부터 떴다 이러는데 솔직히 서운해요. 뭐가 됐든 뿌린 씨 없이 거두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법륜 스님이 ‘지금은 언젠가를 위한 적금’이라고 한 것처럼요.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맘 먹고 나서부터는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쪼개가면서 살았어요. 작품도 2, 3편씩 하고 운동·발성·노래 안 배운 게 없어요. 제가 누구처럼 연기력을 타고난 배우는 아니니까요. 어느 강의에서 들은 얘기인데, ‘운칠기삼’이라는 말보다는 사실 ‘복칠기삼’이 맞다고 해요. 운은 요행히 오는 거고 복은 자기가 쌓아둔 게 있어서 받는 거죠. 대학 편입이나 석사 학위도 그래요. 누구나 시작은 할 수 있지만 끝내는 건 아무나 못하잖아요. 이런 걸 하나둘씩 끝내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붙었고 제가 쌓은 노력 덕에 지금처럼 많은 분들이 저를 사랑해주는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연기력을 타고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좌절한 적은 없나요.

“제 별명이 ‘자책’이에요. 동생(김성경 아나운서)이 '언니는 제발 자책 좀 그만 하라'고 늘 그래요. 재미있는 건 ‘난 왜 안 될까?’하는 부정적 마인드가 절 성장시켰다는 거죠. 늘 제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나아지려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가진 재능을 찾은 것 같아요.”

-그게 뭘까요.

“가령 제가 실수하거나 푼수처럼 보일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요. 예전엔 사람들이 저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는 걸 몰랐어요. 이건 계산한 게 아니거든요. 배우가 실수를 해도 관객이 웃어준다는 건 그 배우한테 실수를 뛰어넘을 만한 친밀감을 느낀다는 거잖아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김성령만이 갖는 매력인 거죠. 그걸 알게 된 게 행복해요.”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배역 비중이 비교가 안 되는데 꾸준히 하는 이유는.

“비중이 아니라 역할이 기준이죠. 그리고 의미가 있으면 해요. 하정우 감독의 ‘허삼관매혈기’에 출연할 건데 두세 신 정도밖에 안돼요. 그래도 연출자 하정우가 어떨까 궁금해서 하기로 했어요.”

집에서는 편안하게…아들 "사람들에게 폭로하겠다"

-관계자들 얘기로는 무대에서 나오던 카리스마가 내려오면 ‘100% 동네 아줌마’로 바뀐다던데요.

“저희 아들이 ‘사람들한테 폭로하겠다’고 협박할 정도로 집에선 편하게 지내요. 슬리퍼에 몸빼에 화장은 당연히 안 하죠. 예전에 친구들이랑 지방으로 여행을 갔는데 아침에 공원에 산책하러 갔어요. 저쪽에서 커플이 오더니 휴대전화를 건네려고 하길래 ‘어머, 지방에서도 날 알아보네?’ 속으로 우쭐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들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는 거에요. 내가 그래도 연예인인데….(웃음) 신데렐라 마차가 밤 12시 되면 호박으로 변하듯이 저도 드레스 안 입고 헤어 메이크업 안 하면 그냥 보통 아줌마로 돌아가죠. 공효진이나 정려원 이런 친구들이 패셔니스타지 전 아니거든요. 오죽하면 얼마 전 만난 남편 친구가 ‘제수씨, 화장한 거 함 들어갈 때 보고 처음 봤습니다’ 그러겠어요.”

-‘중년 여성들의 로망’이라는 칭찬이 한편으론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강박은 없나요.

“저도 여자니까 주름 생기는 건 싫어요. 하지만 이젠 노화에 대해서도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해요. 배우는 내가 계속 아름답기 위해 노력하는 직업이니까 복 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노력을 해야 돈 받고 할 수 있죠. 연기는 어떤 점에선 봉사라고 생각해요.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면 좋은 모습을 보여야죠.”

-통신사·식품·약품·샴푸 등 다양한 분야의 광고를 최근 찍었는데 하고 싶은 CF가 있다면.

“음…커피 광고? 요새는 원빈이나 조인성처럼 잘생긴 젊은 친구들이 커피 광고를 찍던데 참 좋아보여요.”

만약 미스코리아 선발 후 연기자로서 승승장구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성령은 “아주 건방졌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MC나 영화 주연을 한다는 게 얼마나 귀한 기회였는지를 몰랐어요. 그냥 주어진 거라고만 여겼죠. 돌이켜보면 데뷔 초엔 참 뻣뻣했어요. 젊은 혈기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고집도 있었고요. 실력이 안 따라주니 금방 꼬리내렸죠. 그게 세상 이치라는 걸 살면서 배웠어요.”

그는 50대를 앞둔 지금 자신의 모습이 편안하고 좋다고 했다. ‘김성령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사람들 얘기에 “부담스럽다”면서도 내심 기쁜 건 그래서다. 왕년의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연륜의 근육으로 견뎌내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듯한 김성령.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갈 그의 ‘인생 2막’이 궁금해졌다.

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JTBC·CJ E&M·롯데엔터테인먼트·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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