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락희|파격발탁·섭섭한 인사 꺼려|사장 모두 유임, 이사 32명승진, 20명 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럭키·그룹」의 주총인사는 소폭으로 조용히 끝냈다.
사장급은 전원이 유임됐고 신임이사 12명을 포함해 32명이 한 계급씩 올라서는 한편 2O명이 수평이동됐다.
스스로가 지적하듯이 인사체증해소를 위해 승진인사가 주축이 되었고 건설회사인「럭키」개발과 수출창구인 반도상사에 특히 승진이 많았던 점을 미루어 해외사업부문에 인사초점이 맞춰졌음을 알 수 있다.
「럭키」개발의 경우 수주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한태희「엔지니어링」사장을 부사장에 겸직시켰고 상무진영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삼익주택에서 김용은·김경호씨, 한국건업에서 김도화씨 등을 데려왔다.
반도상사도 지난해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본부장급에서 4명을 이사로 승진시켜 종전 4자리이던 이사를 7자리로 대폭 늘렸다.
부사장급의 이동으로는 석유화학이 휴면상태에 들어감에 따라 한성갑씨가 다시 호남정유로 원대복귀하는 한편 범한화재의 이재희씨가 제자리에서 승진했고 홍종우씨가「카본」에서광업제련 부사장으로 옮겨 앉았다.
그러나 사장전원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만큼 구자경회장을 정점으로한「럭키」의 인사체계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특별한 일, 아니 곡 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이상 인사이동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럭키」의 생리이기도 하다.
인사에도 일의 능률보다 인화를 따진다. 파격적인 발탁이 없는 대신 두드러지게 물먹는 「케이스」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분위기다.
한국의 대표적인 친족경영체제지만 그런 냄새가 별로 나지 않고 푸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인화덕분이고 또 그것이 바로 사시다.
구회장자신부터가 매우 느긋한 성품이다. 한 임원이 『퇴근시간을 1시간씩 늦춰 생산성을 올리는 대신 그만큼 봉급을 올려주자』고 제의했다가 『개인회사는 편한 맛에 다니는 것인데 그걸 어떻게 빼앗아』하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한다. 아랫사람이 불편해 할까봐 6시만 되면 딱 퇴근하고 공휴일엔 아예 회사근처엔 얼씬거리지 않는다.
구회장의 주변에는 부친을 도왔던 창업원로 허준구· 구평회·윤욱현씨 등이 아직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금성전선 사장직을 맡고 있는 허준구씨는「그룹」내 최원로이고 구회장의 삼촌 구평회씨 (호남정유 사장) 는 현존 구씨 문중의 연장자다.
치약에서「라디오」를 만들자고 외쳤던 윤욱현씨(금성계전사장)는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은 기획력으로「그룹」전체의 진로결정에 한몫을 하고 있다.
박승찬씨 이후「럭키」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은 역시 금성사 사장 허신구씨로 꼽힌다. 「하이타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고 「보수럭키」속에서도 「불도저」로 통하는 추진력을 발휘해봤다.
52년 사원으로「럭키」에 입사해서 사장이 됐고 금성전선이 생기면서 초대사장으로, 박승찬씨의 뒤를 이어 금성사를 맡아 그동안「럭키」경영의 핵심에서 벗어난 일이 없다.
「럭키」사장 구자학씨는 한때 잠시「럭키」를 떠났다가 국제신문사장을 거쳐 다시 본가로 돌아온 셈이다.
이재연「럭키·콘티넨탈·카본」사장은 서구적인 풍모에 어울리게 일처리 역시 「스마트」하다. 구인회씨의 사위이며 대림산업 이재준회장의 실제.
금성통신을 맡고 있는 구두회씨 (막내동생) 는 오랫동안 은행에 몸담았던 터라 경리에 매우 밝다는 평이다.
「럭키」개발의 홍성언사장은 이름난 공주부자 자손. 미군관계조달책임자로 일하다 탁월한 영어로 금성전선이 생기면서「럭키」가족이 됐다. 일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타입」이다.
희성산업 사장 이헌조씨는 겸직하고 있는 기획저정실장일의 비중이 더 크다.
「그룹」내 안 거친 회사가 없어 안사정을 잘 알고 항상 구회장 가까이에 있다.
「그룹」의 최고경영회의인 사장회는 주1회로 열린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의논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회사별로 철저한 독립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국1성주의이다.
회장직속기구인 기획조정실이 하는 일도 각사간의 연결기능이나「서비스」성격의 업무에 국한되어 있고 회장의 결재사항도 신규투자 등 몇가지를 아예 관리규정으로 못박아놓고 있다.
그밖에는 각 사장들이 재량껏 알아서 하도록 한 제도적인 장치인 셈이다.
회사들끼리 서로 간섭하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한다. 급하다고 서두르는 것도「럭키·타입」이 아니다. 다소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신중을 기한다.
앞서간 사람이 안 빠지고 건넌 돌다리도 꼭 두드려봐야 건넌다.
능률이 떨어졌다고 사표내라는 일은 거의 없다. 웬만하면 연공서열에 따라 승급된다.
반면에 입사 16∼18년이 되어야 이사가 된다는 면에서는 인사체증이 타사에 비해 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소 승진이 늦은 것은 대과가 없는 한 결코 그만 무게 하지 않는다는 「보장성」 으로 「커버」된다. <이장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