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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꽉 찬 '할머니표 샐러드빵' 성남 명물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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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베이커리 겸 카페 ‘마망’ 매장 안에 선 할머니 직원들. 할머니들은 “일을 하니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흰 모자는 빵을 굽는 생산팀, 빨간 모자는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는 카페팀이다. [김상선 기자]
나무로 테라스를 꾸미고 파라솔을 설치한 마망. 경로당 2층을 개조해 만들었다. [사진 성남시]

속이 꽉 찬 600원짜리 샐러드빵은 한입 베어물기가 버거울 정도로 두툼했다. 1500원짜리 피자빵은 식빵 두 겹 사이에 두꺼운 햄과 슬라이스 치즈, 양파·당근·피클을 넣었고 빵 위에도 토마토 소스와 모짜렐라 치즈, 피클을 얹었다. 식사량이 적은 사람이라면 하나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였다. 종업원도 남다르다. 제일 젊은 직원이 62세, 최고령자는 81세다. 경기도 성남시 산성동의 빵집 겸 카페 마망(maman·프랑스어로 ‘엄마’란 뜻) 얘기다.

 마망은 최저임금인 시급 5210원을 받는 할머니·할아버지 25명이 끌어간다. 여느 빵집보다 훨씬 값이 싼데도 연간 매출은 3억원이 넘는다.

 지난 19일 오전에 들른 마망은 한참 분주했다. ‘따르르릉’ 전화 벨이 울리자 빨간 모자를 쓴 심순식(67) 할머니가 수화기를 들었다. “네, 카페 마망입니다. 29일 오후 1시까지 치즈머핀 81개요. 고맙습니다.” 인근 어린이집에서 온 단체 주문이었다. 제빵실의 9개 대형 오븐에서는 피자빵·머핀·옥수수식빵 등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23일까지 예약된 주문이 빼곡했다.

 마망은 2005년 8월 산성동 주택가에 자리한 수정노인종합복지관 옆 경로당 2층에 문을 열었다. “어르신들께 일할 공간을 드리자”는 복지사들의 아이디어였다. 할머니 12명이 빵 만드는 법을 배워 참여했다.

 처음엔 초라했다. 주택가 귀퉁이에 자리잡은 빵집을 찾아오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2005년 8월 문을 열고 연말까지 4개월 남짓한 동안 매출이 수백만원에 그쳤다. 그러자 할머니들이 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원년 멤버로 지금도 일하고 있는 권국지(73) 할머니는 “주부로 평생 살다가 영업까지 하겠다고 뛰어나간 것”이라며 “우리 빵집은 우리가 살려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학교·어린이집 등을 다니며 시식회를 열고 주문을 받았다. 서울에서 잘 나간다는 젊은 제빵사를 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손주 줄 음식 만들 듯 재료를 팍팍 쓴 ‘할머니표’ 빵”이란 소문이 퍼졌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중심으로 단골 고객이 늘었다. 인근 성당과 공기업 등에선 “연간 납품 계약을 맺자”고 했다. 단골 강은주(34·여·산성동)씨는 “건강한 빵집이어서 네 살 딸에게 안심하고 먹인다”고 말했다.

 개업 4년 여 만인 2009년 매출 1억원을 기록했다. 이젠 3억원을 넘어서면서 할머니·할아버지 직원은 25명이 됐다. 빵 만드는 생산팀에 할머니 14명, 카페팀 할머니 8명, 배달팀 할아버지 2명, 고객관리 할머니 1명이다. 고객관리 담당 노기오(65) 할머니는 과거 백화점에서 고객관리를 맡았던 경력이 있다. 카페팀 8명 중 7명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이숙이(67) 할머니는 “건강한 몸 놀리기 아까워 일하려 했는데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얻게 될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2명은 오전 7시에 출근해 경차를 타고 하루 20여 곳에 빵을 배달한다. 김흥수(70) 할아버지는 “다시 일을 하니 복지관에서 운동삼아 탁구를 칠 때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다”고 했다.

 마망은 사회공헌도 한다. 매달 두 차례 인근 무료급식소에 소보로·단팥빵 1000개씩을 제공한다. 그러고도 지난해 1000만원을 남겨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다. 마망이 성공을 거두자 성남시는 2012년 지하철 8호선 모란역 인근에 2호점을 열었다. 최근엔 보건복지부의 ‘노인 일자리사업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3000만원을 받게 됐다.

성남=윤호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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