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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 아르메니아에서 배웠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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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짧게 자른 단발머리, 수수한 한복에 감아쥔 양손. 서울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은 2년 반째 일본대사관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다. 한 맺힌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세운 청동상이다.

 천 마디 말보다 강렬한 감동 때문인가. 이 자그마한 소녀상 건립 붐이 안팎에서 불고 있다. 국내에선 일본대사관 앞을 비롯, 고양·성남·수원·거제·화성 등 6곳에 이미 세워졌고 많은 지자체가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해외 열기도 뜨겁다. 지난 16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이어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미국 한복판에 또 하나의 소녀상이 건립됐다고 흐뭇해할 일인가. 꼭 그렇진 않다. 한 자락만 들추면 양쪽 맥락이 사뭇 다른 탓이다.

 글렌데일의 소녀상은 시 의회 승인을 거쳐 세워졌다. 그리하여 건립 장소가 도시 한복판인 시립 중앙도서관 앞이다. 오다가다 낯선 소녀상을 발견한 시민들이 그 사연에 관심을 가질 터다.

 반면 디트로이트의 경우 시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공공장소엔 못 들어섰다. 궁여지책으로 세운 곳이 한인 문화회관 내 앞마당. 한인 사유지다. 문화회관 출입자의 다수가 군 위안부가 뭔지 훤한 한인들일 거다. 미국 현지인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엔 문제가 있다. 절반의 성공이다.

 왜 이렇게 됐나. 미국 속담엔 이런 게 있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비밀은 글렌데일 시민이었다. 다수가 한국인처럼 슬픈 역사를 지닌 아르메니아인이었던 거다.

 인구 300만 명에 경상도만 한 중앙아시아의 소국 아르메니아. 한국에선 덜 알려졌지만 20세기 초 오스만제국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당한다.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민족주의가 부각되면서 제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다 참변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숨진 숫자가 최대 200만 명. 20세기 최초의 대규모 인종학살이다.

 살아남은 아르메니아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도망쳤고, 그중 많은 수가 미국에 왔다. 미국에 온 이들은 한 곳으로 몰렸다. 바로 글렌데일이었다. 현재 주민의 30%가 이들이다. 이런 역사 탓에 아르메니아인들은 일제에 신음했던 한인들에게 동정적이다. 이 덕에 이곳에 번듯이 소녀상이 세워질 수 있었다.

 한인과 아르메이나 교민들 사이에 유대가 생긴 건 2007년. 한인 단체들이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였다. 공교롭게도 아르메니아 교민들 역시 아르메니아 학살 규탄 결의안을 추진 중이어서 서로 협력하게 됐다.

 20세기 최고의 비극으로 꼽히는 사건은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학살이다. 나치에 의해 700만 명이 살해됐다. 2차 대전 이후 유대인들은 처절한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도처에 박물관·기림비에 조형물들을 만들었다. 주요 시설만 미국·이스라엘·독일·프랑스는 물론 일본에 이르기까지 20개국 65개소에 달한다.

 하나 홀로코스트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종학살은 아니다. 신대륙 발견 이후 1억 명 이상의 인디언들이 서양인 때문에 죽었다. 땅 욕심에 눈이 먼 유럽 이민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거나 이들이 묻혀온 홍역 같은 악성 전염병에 의해 쓰러졌다.

 그런데도 인디언 학살을 추모하는 시설물은 거의 없다. 심지어 워싱턴 내 미 국립인디언박물관조차 인디언과 백인 이주자 간의 갈등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윈스턴 처칠의 경구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른 역사적 비극도 마찬가지다. 후손들의 노력에 따라 그 역사가 묻혀지거나 되살아난다. 이런 의미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의 성과는 놀랍다. 아르메니아 학살과 관련, 15개국에 33개 박물관·기림비 및 조형물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주목할 점은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들은 세 가지 원칙을 지켰다는 사실이다. 첫째, 연방 정부나 지자체의 공식 결정으로 추진하고 둘째, 공공장소에 설치하며, 끝으로 공공기관에 관리를 맡긴다는 거다. 그래야 진정한 기림물로서 제 몫을 하는 까닭이다. 그간 미국에 설립된 위안부 관련 시설은 소녀상 2개와 기림비 6개 등 모두 8개. 이 중 상당수가 한인 사유지에 세워져 있다. 이래서야 제 구실을 하겠나.

 역사적 비극과 관련된 시설은 후세와 외국인에게 진실을 알리는 데 긴요하다. 일제 수탈과 군 위안부 문제 등을 알아야 왜 한국인들이 일본을 쉽게 용서할 수 없는지 이해가 된다. 아니면 과거사 문제로 아베 정권과 마찰을 빚는 한국 정부가 속 좁게 비춰질 거다.

 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화되면서 이를 홀로코스트, 흑인차별, 아르메니아 대학살, 아일랜드 대기근 등 미국 사회가 주목하는 역사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부각시키려는 풀뿌리 시민운동이 한창이다. 한인 밀집지역인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도 소녀상이 세워진다고 한다. 호주·싱가포르·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도 소녀상·기림비 설립운동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하려면 제대로 하자. 아르메니아인들이 그랬듯 소녀상이든, 기림비든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정식 허가를 거쳐 공공장소에 들어서게 해야 한다. 별 얻는 것 없이 일본인들의 감정만 건드리는 것만큼 ‘하지하책(下之下策)’도 없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