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만 갖추고 가락을 놓친 작품 많아|틀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로운 구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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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시조 「캠페인」도 그것이 거듭거듭 쌓여서 비로소 저변인구의 확대에 한몫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응모된 작품 중에는 시조가 아닌 것이 많았다. 우선 자수율부터 틀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시조라는 외형만 가져왔지, 그 가락을 놓치고 있는 것이 두드러졌다.
원래 틀은「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따라오게 하는 것」에 주된 「포인트」가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틀에 구속될 것이 아니라, 틀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자기의 시상을 반죽할 수 있게 된다. 즉 내용과 형식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기보다는 용하게 한군데 통일 감이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 훈련에 열과 성을 쏟기를 바란다.
『청산신곡』은 아직 그 틀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였다. 글자 수는 파격을 안 했지만 어딘지 형식에 질질 끌려 다닌 느낌이다. 형식에 보다 구애받지 않고, 거기서 한 걸음 뛰어 넘어야할 것이다. 셋째 수에서는 「청산」이란 말을 세 번씩이나 잦게 쓴 것도 조그만 실수였다.
『편지』는 틀을 다소 소화한 느낌은 있으나 그 대신 내용이 빈약한 것이 흠이다. 시조는 내용이 되는 시도 문제고, 형식이 되는 틀도 문제다. 이두가지가 행복한 공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출근』은 비교적 내용과 형식이 어느 한군데 뒤지지 않고 조화를 보이고 있다. 종장마다 「액센트」를 준 솜씨도 돋보인다. 그러나 「리듬」이 좀 자연스러웠으면 했다.
힘을 솟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독자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되겠다.
『소망』은 시로서의 능력이 미진한 것 같다. 형식만 시조라고 해서 옳은 의미의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응분의 시와 응분의 가락이 합치해야만 하는 것이다. 더 부지런히 애쓰기를 당부한다. <박재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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