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백4세 최병태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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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욕심이 없는 마음에 장수가 찾아든다.
올해로 1세기하고도 4년을 더 살고 있는 최병태옹(서울 용산구 청파2동90). 고종 24년인 1877년 충남 논산생.
90여년을 외곬인생 오로지 농사만 지어왔다는 최 할아버지는 흙의 정기를 이어 받은 듯 약간 허리가 굽은 것 외에는 아직도 정정하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너무 게을러서 못써』
진정한 농사꾼은 해 뜬 후에 일어나는 일이 없는 법. 최 할아버지는 요즘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큰 글씨의 성경을 읽는다.
『재작년만 해도 근력은 쓸만해서 밭에 나가 일을 좀 거들었는데 이제 힘쓰는 일은 영 못하겠어. 그래 지난해 봄에 서울로 아주 올라와 버렸어』
아들네 집에 처음 왔을 때는 젊은 손자들이 꽤나 곤욕을 치렀다.
새벽같이 일어나 2층을 오르내리며 몇 차례씩 깨우는 바람에 손자들은 아침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이른 등교시간에 맞춰 일어나도 1백 평생을 농사로 보낸 최 할아버지 눈에는 게으르게만 보였던 것.
『별다른 무병장수의 비결이 어디 있겠어. 그저 열심히 일하고 남한테 해 안 끼치고 살면 그걸로 되는 거여』
백년해로는 안되지만 70년을 동고 동락한 정순예 할머니(83)는 정말 깨끗하게 사신 분이라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는다.
『14살 때 34살 난 늙은 총각에게 시집와서 고생도 많이 했지라』
최 할아버지는 따뜻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본다.
옛날얘기 좀 해달라는 질문에 최 할아버지는 일본인에게 좁쌀 밥 해주던 당시를 회상하며 껄껄 웃는다.
『구한말 때 일본인이 처음 와서는 밥을 해 달래요. 그래서 쌀밥을 해주면 자꾸 몰려온다고 해서 동에서 좁쌀을 구해 다 좁쌀 밥을 해주었어.』 좁쌀 밥을 먹는 가난한 마음을 보여 일본인의 농토 잠식을 막으려했던 당시의 소박함이 고소를 자아낸다.
『나이를 많이 먹은 께, 예의 범절을 따지는 고향에는 친구가 없어. 서울에서는 그런 것 없어 좋구만』 노인당에 나가면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이 20∼30년 연하. 지금 다니는 노인당엔 91살이 최 할아버지 다음 서열의 고령자다.
『이젠 모두 망년우야』
도시에서는 나이를 잊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노인에 대한 대접이 시골보다 아주 못 하다는게 최 할아버지의 솔직한 심정이다.
며느리 문복순씨(47)는 『연세가 그렇게 많은데도 빠진 이도 한 개 뿐으로 가리는 것 없이 잘 드신다』며 불편 없이 잘 모시겠다고 했다.
최 할아버지는 큰아들을 6·25 때 잃어 지금은 둘째아들과 산다.
가족은 2남3녀에 손자 29명, 증손자가 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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