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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님? 하느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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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물가를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마이너스금리인데 벼룩 간 빼먹는 것 같은 금리인하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합니까.”

 일본에서 오래 일하다 은퇴했다는 한 독자가 이달 초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또박또박 힘주어 쓴 손글씨로 저금리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절절히 담았다. 그의 기대와 달리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연 2.25%가 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2%)와 비슷해졌다. 시중은행에 1억원을 맡기면 1년 이자가 200만원 남짓이다. 젊을 때 두 자릿수였던 금리를 생각하고 성실하게 금융자산으로 노후를 대비해온 사람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다. 그 같은 은퇴자에게 ‘한은님’은 어쩌면 ‘하느님’일 수도 있다.

 물론 명목금리만 보면 한국은 양반이다. 미국과 일본은 제로금리를 한 지 오래고, 유럽 중앙은행은 아예 은행들이 맡긴 돈에 벌칙금리를 매기는, 이른바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다. 사정 없이 돈을 뿌려대는 이런 정책이 다음달이면 꼬박 6년이 된다.

 그래서일까. ‘초저금리’라 불러도 좋을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양 의지를 뚜렷이 내보임으로써 침체된 내수와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작용이 있겠지만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외부요인 두 가지가 더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타이밍이다. 한국은 달러나 유로 같은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가 아니다. 원화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보다 달러나 유로화 금리 변동이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미국 분위기는 금리 인하 쪽이 아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 축소에 이어 적어도 내년엔 금리를 올릴 거라는 신호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원화값이 떨어지고 달러값이 올라가면 국내외 자본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빤하다.

 둘째는 마지막 카드가 아니라는 보장이다. 금리를 한 번 더 낮춰 2%로 한다고 하자. 여기서 더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 기준금리의 바닥이 어딘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은 안팎에선 2% 전후라는 얘기가 많다. 북한 변수와 같은 이런저런 국가위험(컨트리 리스크) 때문이다. 추가 금리 인하는 자칫 예기치 못한 위기가 불거졌을 때 한은은 물론 우리 경제를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

 편지를 보내온 독자 같은 개인에겐 ‘한은님’이 ‘하느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를 상대로 해선 그렇지 않다. 중앙은행이 경기판단을 그르치거나 금리선택을 잘못해 위기를 발생시키고 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금융의 신’으로까지 추앙받던 그린스펀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한은님’은 결코 ‘하느님’이 될 수 없다. 요즘처럼 복잡한 상황에서의 금리 판단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부족하지 않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