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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1)|제72화 비관격의 떠돌이 인생 <제자=필자>(18)|「효자」란 일본 여자김소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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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마음에 티끌 하나 없던 소년기의 그날을 회상할 적 다 하얗게 눈에 덮었던 서울이 그리워진다. 서울서도 그뒤 여러 해를 지냈건만, 무더운 여- 매미가 울고 참외 장수가 지나가고 하는 그런 여름은 별로 기억에서 찾을 수가 없다. 10수년 남의 나라에 발을 멈추면서도 눈감고 생각하는 서울은 언제나 눈 속에 하얗게 덮여 있는- 손이 시려서 입김으로 호호 부는 그런 서울이다.
『외투』라는 수필에서 나는 내 생리가 겨울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썼다. 과연 그런지-. 혹시나 서울에 처음 내렸던 그날의 눈길을 밟으면서 느낀 강렬하고도 청신한 인상의 여운이 내 젊은 생리를 그냥 겨울에다 붙들어 맨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본 공초 선생은 시인이라기 보다 종교가에 가까운 진지하고 경건한 모습이었다. 꽤 많은 책들이 그 방에 있었다. 단정하게 뒤로 빗어 넘긴 「올백에는 흐트러진 머리카락 하나가 없었다. 나는 중세기의 철인이나 청교도를 대하듯 경한 마음으로 그를 대했다.
그후 수십년을 두고 공초 선생을 마음에 모셨건만, 단 한번도 나는 그날같이 서재에 앉은 선생을-, 시를 두고, 예술을 두고 얘기하는 공초 선생을 내 눈으로 본 일이 없다. 해가 저물어도 어디라 돌아갈 잠자리조차 없는-, 담배 물부리 하나만을 죽자 하고 손에서 놓지 않는 표박자 공초 선생을, 처음 만났던 그날의 인상에 연결시킬 도리는 없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던 무명치마 저고리의 여인- 공초 선생을 오빠라고 부르던 그 아리따운 여인은 역시 일본 여성이었다. 효자라는 이름을 아마 본시는 「다까꼬」라고 불렀으리라. 마치 상제처럼 흰 무명치마 저고리를 입었던 그 여성이, 빨간 「망토」에다 「하이힐」을 신은 요염한 모습으로 견지동 노상을 지나가는 것을 한번 만난 적이 있다.
『포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처럼 그날 내가 본 효자는 전신에서 요기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그 여자가 실상은 애련의 가시밭길을 헤매던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란 것을 내가 안 것은 훨씬 뒷날 일이다.
효자를 두고, 더 자세히 얘기할 수 있는 이가 몇해 전까지만 해도 한두 사람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고인이 돼 버렸다.
나도 그냥 덮어두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초 선생의 생애에 단 한번 반딧불 처럼 반짝이고 사라진 이 극채색의 단면을 그냥 눈감고 지나갈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몇몇 고인의 이름을 빛낼 향기롭고 아름다운 얘기는 못된다 할지라도-.
효자의 본 고향이 일본 어디인지는 모른다. 6, 7세까지 대만에서 자랐다고 한다. 내 추측이기는 하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재가, 그후 계부가 대만으로 전근됐거나 이주를 했다는 그런 사연이 아니었던가 싶다.
목에다 끈으로 달아맨 목패 하나를 걸고 효자는 대만에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어린 소녀 하나가 갈 곳을 적은 나무패를 목걸이처럼 달고 배로, 기차로 혼자 일본으로 오는 그런 광경을 상상만 해도 극적이고 운명적이다. 마치 그의 기구한 청춘을 상징하듯이-.
어린 시절을 어떻게 자랐는지, 목패에 적힌 주소에는 누가 살고 있었는지 그런 것도 나는 모른다. 효자가 한 여성으로 성장한 뒤, 동경에서 어떤 조선 청년과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그 청년과 같이 서울엘 왔다. 살림이 넉넉한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청년의 주위에 예술가다, 문인이다 하는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애인인 그 청년에게는 부인과 자식이 있다. 효자가 그를 떠났는지, 그가 효자를 버렸던 것인지, 이 역시 진상을 나는 모른다. 청년 A에서 그의 친구인 B에게로 효자는 보금자리를 옮겼다. B에서 C로, C에서 다시 D로-, 한 덩어리의 고기를 뭇개가 서로 찢듯이 효자는 A의 친구라는 몇몇 지식인 청년들 사이에서 차례 바꿈으로 「돌림 애인」노릇을 했다.
A와의 애정 파탄이 효자를 자포자기에 몰아 넣은 것인지, 혹은 「마농·레스코」나 「나나」의 여주인공처럼 그의 천성에 음탕한 피가 흐르고 있은 것인지,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제쳐두고, A의 주위에 있던 소위 지식인이라는 그 사람들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었던지는 이만한 설명으로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상아탑」이란 아름다운 호를 가진 시인 황석우가 그 C였는지, D였는지- 몇몇 단계를 거쳐서 효자는 황 시인과 동거를 하게 되었다. 거기 하루는 E라는 시인이 찾아 왔다. 밤늦도록 담소하다가 E는 돌아갈 시간이 지나 단간방 살이인 황 시인과 같이 한방에서 자게 되었다.
이 얘기를 내게 들려준 수주 변영로씨의 어투로는 『같이 자면 잤지 그 별난 친구들이 효자를 가운데 두고 잘게 뭔가?』-『이 가운데다 두었다』는 데서 비린내나는 사고가 생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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