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연해진 북괴 속셈|왜 「1·12제의」를 거부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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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가 이른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김일의 성명을 통해 우리의 「1·12 대북제의」를 전면 거부한 것은 말로만 평화통일을 외치는 북한의 허구성을 드러낸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제의가 있은 지 1주일만에 나온 김일의 성명은 우리측 제의를 『평화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첫 출발부터 흐지부지 시간이나 끌면서 2개의 조선을 조작하려는 책동』 이라고 엉뚱한 구실을 달기까지 했다.
북괴의 이같은 거부는 예상되던 것이긴 하지만 논리에 궁한 나머지 우리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과 함께 김대중 등 정치범 석방, 반공정책 포기, 「6·23선언」 취소, 주한미군 철수 등 우리 국내문제를 예의 상투적 방법으로 헐뜯기에 급급했다.
이는 북괴가 최고당국자간의 대화를 통해서 남북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은 물론, 그 동안 남북대화의 중단 책임을 우리 쪽에 미루어왔던 책략이 드러나게 되자 당황한 나머지 악랄한 비방선전을 되풀이하는 속성을 다시 한 번 노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통일문제를 논의하는데는 자신이 없음을 입증한 것이며 그들의 전략이 대남적화통일에 있음을 다시 보여준 것이다.
북괴가 「1·12」 제의를 수락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 사회를 개방하고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평화공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고려연방」이라는 위장전략을 통해 적화통일을 달성하려는 대남 기도가 달성될 수 없다는 계산을 북한은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겉으로는 평화통일을 말할 수 있어도 실천적 행동은 보일 수 없는 북괴의 자가당착적 고민이 다시 한 번 노출된 셈이다.
75년 10월에 발간된 북괴의 이른바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이론」이라는 책자에 의하면 『남조선에서 혁명역량을 보존하고 혁명정세를 발전시키는 것은 남조선혁명발전의 필수적인 요구』 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남한 내의 반공정부를 혁명 대상으로 간주하고 남조선혁명을 위해서는 이 반공정부를 반드시 전복시켜야 한다는 전제하에 대중적인 반정부 투쟁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는 계략을 갖고 있다.
결국 북괴는 우리 사회의 혼란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남북간의 어떤 접촉이나 대화도 배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괴의 김일성·김정일 세습이 문호개방과 남북 당국자간 대화를 통해 한낱 웃음거리 정치체제로 전락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대화 거부의 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미 북한의 세습체제에 대해서는 자유국가들로 부터 조소를 받았다. 이러한 허점이 노출되는 것을 김일성 족벌이 싫어할 것은 뻔한 일이다.
어쨌든 북괴의 대화거부로 북괴가 앞으로도 적화혁명의 망상을 버리지 않고 우리의 내부 문제를 간섭하면서 국론 분열과 사회혼란을 획책해 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 내부에서 혼란이 야기돼 자연붕괴를 노리는 것이 북한의 제1 목표이고 그 다음이 「가장 좋은」 시기를 잡아 무력도발을 기도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라고 볼 때 북한의 1·12제의 거부는 그들 노선에 아무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실력을 바탕으로 북괴를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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