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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맑은 공기, 파란 하늘, 어질고 착한 사람들, 산자락 초가마을, 솔바람 소리, 새소리, 시냇물 소리. 공기만큼이나 대수롭지 않게 우리들 주변에 있었던 것인데 언제부터인지 그것들이 사라져간 자리에는 대중 목욕탕 속의 수증기 같은 도시들이 들어서고, 삭막해진 「시멘트」공간 속에는 사랑·평화·믿음은 색이 바래졌다.
자연의 부활을 간절히 소원하며 부르짖을 수록 산소가 부족한 어항 속의 금붕어 입을 닮아간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눈만큼은 하얗게 내려주고 있으니. 흰 눈 빛의 반사로 집 안팎이 환해지면 나는 갑자기 친구가 그리워진다. 단절된 정이 눈빛에 촉발되어 붓 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진다.
적어도 눈빛만큼 마음이 순수해지는가 보다. 희고 깨끗한 눈의 결정들을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절묘한 아름다움에 우리는 감탄하게된다.
자연의 미립자는 아름답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것을 확대해보면 조잡하고 거칠기만 하다. 만일 지금의 현미경보다 더 고도의 「렌즈」가 발명되어 미립자를 극한으로 확대한다면 정교한 질서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의 절대치는 공으로 환원되어지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 그 심연도 자연의 현상과 똑같을 것이다. 바다 밖으로 내민 잠수함의 잠망경 같이 바깥 세상으로만 내민 우리의 눈을 심연 깊이 감추어둔 절대치의 세계로 돌려서 확대해갈 때 그 마음의 심도만큼 현현되어 나오는 이 세상은 참으로 살아 볼만한 곳으로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가시적인 형상 속에 진짜로 중요한 것이 감추어져 있음을 마음의 눈으로 다시 찾아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신유년 새해 새날을 맞는다. 【박근자 <여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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