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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된 매듭 김희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랜 역사가운데 선 조들의 높은 안목과 솜씨로 다져 온 조형예술분야인 매듭의 기법이 그 맥이 끊어질까 보아 염려하던 때가 있었던가 싶게 요즈음은 상가에서나 어느 가정에서나 온통 매듭열풍이 대단하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 전승공예의 아름다움은 일반적으로 잊혀져 있었고 또 알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던 것에 비해 놀랍고 반가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근년 들어 부쩍 매듭의 저변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격조 높은 이 분야가 향기를 잃고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주변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어쩐 일일까?
기와 예를 익히는 마음은 고지식하고 참되며 그 길은 멀고 험하여 인내와 각고 끝에 한사람의 장인이 제몫을 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2, 3개월에 그 어려운 기법을 익히고 만들어 내었다는 상품 앞에 할말을 잃었다.
물론 예도 위에서 다져진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과 취미 삼아 만든 것과는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 어느 길도 시간을 다투어 서두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는 말이 있듯이 대충 배워 또 가르치고 조금 알면 과장하게 되는 부조리 속에서 어떻게 우리 문화유산을 옮고 바르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전통성이 흐려진 국적불명의 새로운 형태가 창안되었다고 모두 한국매듭일 수 있을까? 전래되어 내려오는 기본형 매듭을 변형시켜야 굳이 현대감각에 맞는다는 생각 또한 위험한일이다.
기계로 만든 찻잔과 손으로 빚은 도자기 찻잔은 엄격히 구분하여 평가기준을 달리하는 안목을 갖춘 분들이 기계로 짠 화학섬유 끈 목으로 맺은 매듭제품과 명주실을 염색하여 전통기법에 따라 격에 맞는 비례와 색감으로 조화를 이룬 작품을 한자리에 놓고 평가하는 어이없는 우를 범한다면 그로 인하여 전통성의 혼돈에서 오는 손실을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정부에서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그 기능보유자를 도와 전수교육에 힘쓰고 있는 것은 바로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은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옳고 바르게 계승하여 우리 역사 속에 그 고유한 아름다움을 뿌리 박자는 뜻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형문화재의 보호·복원작업은 이루어졌어도 유형문화재의 어머니 격인 무형문화재 보호운동은 모든 이들의 관심 밖이었다.
이제 우리 매듭을 사랑하는 모든 여성들이 외형상으로 드러나는 조형미의 내면에 담겨진 정신적인 보배로움을 소중히 여기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참다운 전통매듭의 아름다움의 본질을 파악하고 가꾸어 갈 때 우리민족의 독자적인 조형감각과 우리의 미묘한 색채호상의 조화에서 얻어지는 특성을 살려 문화유산으로 물려주게 될 것이다. <매듭 장·인간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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