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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민주한국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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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 신민당의원을 창당추진세력으로 하는 민주한국 당은 정치활동규제해금으로부터 불과 6일 사이에 금해자 회의·주비위구성·발기인대회 등 창당일정을 믿기 어려울 정치의 초 「스피드」로 치러 냈다.
과거에 대한 정리 등 많은 미해결의 문제는 그냥 덮어놓고라도, 그리고 장래에 대한 숱한 미지수를 들먹이기에 앞서「콜콤부스」의 달걀처럼 혼돈 위에나마 우선 당을 세우자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이렇게 해야 하는 당위에 대해 유치송 창당준비위원장은『정당정치를 하는 사회인이상 야당은 제약 속에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일단 존립함으로써 장래의 목적달성을 향한 터전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말하자면 과도기적 성격이 되더라도 야당은 건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같은 여건 속에서 서둘러 선정된 발기인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면모를 보였다.
48명의 발기인중 신민당·통일당, 그리고 그이전의 민주당에 몸담았던 당인이 모두 합쳐 28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 손세일·윤기대·정진길·채규희·서석재·심완구씨 등 6명 은 당료 이거나 정치 본궤도에는 처음 오른 새 인물.
결국 관계·법조·실업인·언론인·군 출신 인사 등 24명과 아울러 신인이 전체의 63%나 차지하는 셈이므로 과거 보수야당체질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인물교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같은 새 인물 속에는 긍정적 의미의 새바람이외에 야당성을 묽게 하는 역기능을 내포하는 요소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니 결과는 두고볼 일이다.
비록 48명에 불과한 숫자라서 아직은 성급한 얘기이지만, 이러한 다양한 인물구성 등으로 보아 이제 민주한국 당에는 과거 야당의 고질이던 파벌과 계보의식은 엷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얘기가 구태여 나오게 된 것은 일부에서『민한당 핵심세력인 10대의원 l7명중 소석(이철승)계가 8명이나 되어 단연 압도적』이라는 등 과거계보가 심심찮게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소석 계로 김준섭·고재청·오홍석·한영수·임종기·김원기·허경만·조규창씨 등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들 중 한사람은『그것은 다 지나간 옛날 얘기』라면서 『아직까지 소석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김준섭·임종기·조규창씨 정도일 뿐』이라며『계보운운은 기우』라고 말한다.
특정계보를 예로 들었을 뿐이지만 이같은 계보 재발우려가 과연 기우로 끝난다면 이보다 더한 다행이 야당에 또 있겠느냐는 게 중론이다.
그러면서도 야당발전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은 설혹 계보정치는 없어지더라도 앞으로 지구당조직선정과정에서 반드시 소외되거나 당내세력이 약화되는 무리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신 주류와 이에 맞서는 비주류가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다.
발기인선정을 놓고도 민주한국 당 수뇌부는 야당원로 윤보선씨 사람인 윤기대씨를 넣은 것을 비롯해 김영삼 계=서석재, 이철승 계=정진길, 고흥문 계=채규희, 신도환 계=심완구씨를 각각 배정했고 특히 장차 조직실무를 맡겨 자 파에 다소라도 유리하게 할 양으로 각기 신민당조직국장을 지낸 L계의 K씨와 K계의 S씨 중 택일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민한당은 정국주도세력이 이끄는 민주정의당이 발기인을 1백5명이나 선정하고 조직책까지 인선해 놓고 있는데 반해 고작 48명만의 발기인을 확정했을 뿐이다.
창당조직책인 신상우 전 의원에 따르면 민한당은 창당대회에 필요한 지구당 창당대회에서 탈락자가 등을 돌리거나 말썽을 빚을 것 등을 염려해 법정지구당(전체 선거구의 4분의l)을 약간 넘는 범위에서만 치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전도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창당추진 수뇌들은 이번이야말로 당 체질개선의 계기로 보고 스스로 하사관으로 호칭하기도 하는 원외 당료 파를 가급적 배제하고 중앙당사무처까지도 기구를 축소하는 한편 국장정도는 국회의원이 맡도록 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어 문전옥답까지 팔아 가며 오랜 세월동안 야당생활을 해 온 불우한 원외 파와의 갈등이 예상된다.
이와 아울러 김의택·서범석씨 등 야당선배들이「선명 야당」또는「뿌리」를 찾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별도 야당을 추진함으로써 민한당 쪽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들의 참여권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입법회의의 유옥우·이태구씨 등은 민한당 쪽을 택했지만 장차 민한당이 조직책인선을 단행하는 때가 되면 소외당한 불만세력이 김·서씨 측의 민권당 쪽으로 몰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아 그저 지나쳐 버릴 대목이 못되는 것 같다는 의견들이다.
아직은 발등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민한당이 조만간 크게 홍역을 치르게 될 또 하나의 문제는 대통령선거에 후보를 내느냐, 낸다면 누구로 할 것이냐는 것.
유치송씨는『정치에 참여하는 이상 대통령후보는 내야하며 선거인단선거에도 후보를 내 보내야 하지 않느냐』면서 그리나 자신은 입후보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상우씨 등은 개인의 사임을 전제하면서 『새 야당을 시작하는 마당에 허심탄회해야 하고 국민 앞에 속일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알몸뚱이가 되어야 한다』며 이번 선거보다는 그 다음 선거에 대비해야 한다고 현실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 이 문제는 시간을 두고 논의될 것 같다.
한편 민주정의당이 대형「빌딩」을 사무실로 확보해 자금력을 벌써부터 과시하고 있지만 민주한국 당은 고작 40평 짜리 사무실 한간 얻는데도「시끄러운 야당」이라 해서 두 번이나 퇴짜를 맞은 것만 보아도 앞으로 선거 등을 위한 정치자금난이 얼마나 심각할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이 구 야당 사람들을 의구심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성원함으로써만 건전 야당이 가능하다』는 것은 비단 유치송씨 만이 아닌 모든 민한당 참여자의 희망일 것 같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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