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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마음을 노래한 동양의 시심|동경국제 시인대회서 김소운씨 강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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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제시인회의(일본지구사 주최·창간3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달 27일부터 27일까지 동경의 간조회관「홀」에서 열렸다. 한국대표 20여명을 비롯, 15개국의 대표 60여명과 일본시인 1백여명이 참가한 이 시인회의에서 한국의 김소운씨가 『동양의 시심』이란 제목으로 주제강연을 해 주목을 끌었다. 다음 글은 김씨의 강연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주>
사무사라고 공자가 말한바있는『시경』의 3백편, 이것은 동양에 있어서 최고의 시로 알려져 있으며 이 작자 불명의 민요풍 가사는 예로부터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 없는」진심의 노래로서 동양시심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기원전 1천년의 시경에 이어 중국에는 당·송·명·청으로 역사를 따라 수많은 시와 시인이 배출되었다. 그것은 도도한 분류며 울창한 삼림이었다.
중국뿐만이 아니고 인도에도, 「페르시아」에도 예로부터 음유 시인이 있었으며 일본에도 『만섭』(만섭집)과 같은 뛰어난 시가가 있었다. 일본의 그 많은 문화 가운데서도 『만섭』은 세계에 자랑해도 좋을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황족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계급의 차별 없이 수록된 이 『만섭』의 시가에는 아주 평범한 일상사가 노래되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그 모두가 언어예술로서 훌륭한 격조를 갖추고 있다.
한반도에도 『삼국유사』와 같은 고서에 드물게나마 1천년전의 시가가 기재되어 있지만 아깝게도 당시 풍부했을 것이 분명한 민족의 시심은 대부분 한시의 영역에 흡수되고 말았다.
이밖에 구어형식의 정형률에 의한 시조가 있으나 그것이 시로서의 열매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이며 이전의 시조에는 강개나 경세, 또는 군주에 대한 충절이라는 이의적인 내용에 머물고 말아 순수한 의미로서의 시가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대신 유고문화의 제약 속에서도 구전민요의 분야에는 분방자재한 민족의 시심이 현란하게 꽃피고 있다. 구전이기 때문에 문헌적 기록은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채집이 가능했던 이조후기의 동·민요만이라도 살펴본다면 그 활달 풍요한 시심을 엿볼 수 있다.
이들 민요는 『시경』에 섞어 넣더라도 그 넘치는 시정의 향기가 못지 않은 것들이다.
이같은 동양의 시심은 민중과 함께 민중의 마음을 노래했다는 것으로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
『「괴테」가 살았을 시대에는 독일국민 모두가 시인이었다』는 말이 있듯 서양도 동양도 시에 있어서는 그것이 서민대중의 생활 속의 숨결과 항상 밀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시에 속성을 영합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풍아유현의 기품을 잃지 않는 곳에 동양시심의 빛이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추이는 동양시심에도 많은 변천을 가져왔다.
시인의 상념은 철학적으로 심화되고 또는 언어감각의 다기한 표현에 의해 언제부터인가 민중의 생활감정으로부터 시가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 동양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며 경향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의 어느 나라든 시인은 그 뿌리가 되고있는 조국에 대해 하나의 숙명적인 짐을 지고 있으므로 여기에 진실로 시인의 기쁨과 영광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어떤 세상이 되더라도 동양 시심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동양적 토양이며 그 토양 위에서 민족의 마음과 호흡을 같이하는 새로운 현대시의 개화야말로 오늘날 시인에게 부과된 임무라는 것을 새삼 밝혀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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