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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82년 6월 2일]'1대 애마부인' 안소영 "오늘부터 보여드려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가장 원시적 갈등을 가장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

80년대를 살지 않았어도 알 사람은 다 아는 영화 ‘애마부인’(1982, 감독 정인엽). 속편이 13편까지 제작된 이 시리즈는 한국 에로 영화계의 시초이자 전설이다. 30년이 지금까지 간과되고 있는 점은 ‘애마부인’은 단순한 ‘에로’가 아닌 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이다.

‘애마부인’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3S(Screen, Sports, Sex) 정책 속에서 시작됐다. 3S정책은 사람들의 시선을 영화, 스포츠, 섹스에 집중시키고자 한 우민화(愚民化) 정책이다. 당시 프로야구 신설, 통금해제(유흥업소 심야영업금지 해제), 영화 검열이 완화와 심야 상영이 허가됐다. 이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것은 스크린과 섹스가 만난 에로영화였다. 1980년대는 에로 영화의 전성기였다. 이 전성기를 본격적으로 연 작품이 바로 ‘애마부인’이다. 이전까지는 감추고 숨기기만 했던 성(性)을 양지로 끌어오자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당시 상황은 이렇게 전해진다. “‘애마부인’이 개봉되던 1982년 2월 6일, 종로 3가에 위치한 서울극장에는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4개월 간 서울극장에서만 31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애마부인 1’. 개봉 당일인 1982년 6월 2일 중앙일보 8면에 실린 포스터에는 “오늘부터 보여드립니다”, “이젠 비디오가 필요 없다!”고 적혀 있다. 제목 ‘애마부인’은 한자로 병기되어 있는데 ‘愛馬’가 아닌 ‘愛麻’다. 검열 과정에서 ‘말 마(馬)’가 야한 뉘앙스를 풍긴다고 해서 대신 ‘삼 마(麻)’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졸지에 식물을 사랑하는 부인이 됐지만 영화상에서 부인들은 줄기차게 알몸으로 말을 탄 채 등장한다.

‘애마부인 1’에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애마부인’ 안소영이 등장한다. 서구적인 외모·몸매와 더불어 연기력까지 갖춘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에서 그는 가슴과 하반신까지 대담하게 드러냈다. 안소영은 1982년 한 해에만 김수형의 ‘산딸기’ 노세한의 ‘탄야’ 등 일곱 편의 에로영화에 출연했다. 당시 수입이 5000만원에 이르렀고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그러나 섹시한 이미지만 부각된 탓인지 이후 배우로서 성공하지는 못했다.

안소영이 맡은 주인공 ‘오수비’는 주체적이면서도 순종적인 여성이다. 수비는 감옥에 있는 남편 신현우(임동진)에게 매주 면회를 가는 정성을 보인다. 그러나 수비는 미술학도 김동엽(하명중)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사랑을 갈구하게 된 수비는 옛 애인 김문오(하재영)를 만나 정사를 갖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변태적인 문오 때문에 수비는 순수한 동엽을 더 그리워하게 된다. 동엽은 수비에게 프랑스에 함께 가자고 하지만 수비는 남편 현우에게 돌아간다.

수비는 남자들과의 관계로만 설명되는 캐릭터다. 동시에 수비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좇는다. 옛 애인과의 불륜에 어리고 순수한 새로운 연인까지, 유부녀임에도 남성들에게 섹시한 매력을 어필하는 수비는 당대 여성들의 판타지의 총합인 셈이다. 하지만 수비는 마치 잠시 꿈을 꾸다 깨어난 것처럼 출옥한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애마부인 1’에 영향을 준 프랑스의 에로 영화 ‘엠마뉴엘 부인(1974)’과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현직 외교관 부인인 엠마뉴엘은 태국으로 여행을 가며 성적 쾌락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까지 엠마뉴엘은 남편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화는 엠마뉴엘이 한 신사의 성철학에 감화돼 킥복싱 승리자에게 몸을 내주며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끝난다. 수비가 결국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남편에게 돌아간 것과는 정반대다. 1980년대 당시 한국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애마부인 1’ 시리즈의 인기는 대단했다. 오수비가 출연한 2편, 현재 김부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염해리가 출연한 3편과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촬영한 ‘파리애마’와 ‘집시애마’까지 흥행에 성공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수위는 높아졌다. 포스터도 현대 영화들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다. 4편부터는 비디오용으로 제작되면서 스토리나 연출 등에서 이전 시리즈보다 수준이 낮아졌다. 결국 1996년에 개봉한 ‘애마부인 13’이 마지막 시리즈가 됐다. 오로지 네임 밸류(name value) 하나로 무려 13편까지 이어온 ‘애마부인’. 30년이 지난 아직까지 ‘애마부인’급으로 화제가 된 에로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사진='애마부인' 영화 포스터, 중앙일보 포토 DB]
남록지 인턴기자 rokji12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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