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쓸모없기에 아름다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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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본격 수포자(수학포기자)의 대열에 들어선 건 고등학교 1학년 ‘미적분’부터다. ‘인티그랄 에프엑스 디엑스…’, 공식을 외워 간단한 문제는 풀 수 있었지만 이 수식이 뭘 의미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적분은 쌓는 거고 미분은 쪼개는 거라는데 왜, 무엇을 위해 쌓고 쪼개는 것인가(지금도 잘 모른다). 그렇게 수학 교과서를 덮고 포기를 선언, 미적분 뒤에 위치한 ‘확률과 통계’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다.

 혹시 수학이 재밌는 학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일본 영화를 통해서다. 오가와 요코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수학자와 20대 가사도우미 교코의 우정을 그렸다. 박사는 80분에 한 번씩 교코에게 신발 사이즈를 묻는다. “24입니다.” “오, 고결한 숫자군. 4의 계승(4×3×2×1)이라니.” 영화 속에는 소수(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 떨어지는 1보다 큰 양의 정수)와 우애수(220과 284처럼 자기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서로 상대수가 되는 두 수) 등 다양한 수와 수식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박사는 말했다. “실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학의 질서는 더욱 아름다운 거야.”

 한국 학생들은 수학을 잘하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세계 65개국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한국의 만 15세 학생들의 수학 평균점수는 세계 1위였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을 측정하는 ‘내적 동기’는 OECD 평균을 0.00으로 삼았을 때 한국은 -0.20으로 나타났다. 수학 공부에 따른 스트레스를 수치화한 ‘불안감’은 0.31이었다. 수학을 잘하지만 재미는 느끼지 못하고, 불안감에 억지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13일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를 계기로 수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수학이 논리적 사고와 창의력을 키우는 데 필수라는 등 수학의 효용을 강조하는 내용도 많다. 하지만 영국 수학자 G H 하디가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서 주장했듯 수학의 진짜 매력은 “세상의 편리함이나 쓸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박사의 영향으로 수학에 빠져든 교코가 요리를 하면서도 정신없이 숫자를 끄적였던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공부를 해볼까 싶다. 과연 미분은 무엇을 쪼개고, 적분은 무엇을 쌓는 것인지.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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