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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2 모를 박살내라"-신화사·인민일보 등서 상세히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 국방상 임표 일당은 고 모택동 당 주석에게 미 전략 폭격기의 이름을 따 『B52』란 암호를 붙이고 『B52를 박살내라』는 지령을 그의 휘하 요원들에게 하달, 모 암살을 기도했으나 모가 D「데이」3일전 이 음모를 알아내 그의 특별열차를 상해에서 북경으로 전속력으로 「논스톱」질주시킴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다고 중공 공식 보도기관들이 24일 일제히 보도했다.
관영 신화사 통신·당 기관지·인민일보 등은 「임·강 반당 10악」재판 3회 공판을 속개한 이날 『임표 「쿠데타」의 파멸』이란 제목으로 모의 위기일발 암살 모면 경위와 임의 탈출 및 비행기 추락 경위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B52는 우릴 신임하지 않는다. B52를 산산조각으로 박살내야한다.』71년 임은 그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임 일당은 71년9월1l일 모의 남부 중공 시찰을 노려 그의 열차를 제1공격지점인 상해와 제2공격 지점인 숙주에서 40㎜「바주카」포·화염방사기·대공포·소제「일류신」10전폭기 등을 동원해 폭파키로 했다. 그러나 모는 임의 음모를 D「데이」3일전인 9월8일 미리 알아냈다.
당시 그는 항주에 있었다. 8일 밤 12시 모 일행이 밤참을 막 먹고 났을때 모는 돌연 그의 특별열차를 항주의 강교 공항 근처로부터 탈출시키도록 명령했다.
열차가 심야의 질주를 하는 동안 모는 상당히 몸을 조심했고 상해에 도착해서는 여러날 묵을 당초의 예정을 변경, 단 하루만을 체류했다.
상해에서 그는 남경으로부터 허세우를 긴급 호출 밀담을 가졌다.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허는 모의 구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모는 모임이 주선한 비밀 경호요원의 승차를 거부했다.
마침내 임 일당의 『D데이』인 11일.
모는 상해에서 북경까지 전속력으로 「논스톱」질주하도록 특별열차 기관사들에게 명령했다.
모의 옆자리에 앉은 보좌관과 모는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방부시가 다가오는데 기착할까요?』
『아니.』
『제남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정지하지 말라.』
『천진에 설까요?』
『그만둬.』
이렇게 해서 열차는 숙주 등 위험지역을 벗어나 드디어 북경 교외에 이르렀다. 모는 돌연 차를 세우고 군 지휘관들 및 민간 지도자들을 불러모아 2시간 동안 비상회의를 열었다. 그리고는 열차를 북경역 구내로 진입시켜 임의 음모가 실패했음을 알도록 했다.
사태를 알아차린 임은 얼굴이 잿빛이 되어 도주를 결심했다.
임은 아내 아들 임립과 및 측근들을 데리고 방탄「적기」「리무진」에 허겁지겁 몸을 싣고 가까운 비행장으로 나갔다. 1971년9월13일이었다. 자정을 32분 넘긴 심야에 그의 탈출기는 무리하게 이륙하는 바람에 활주로의 기름「탱크」와 부딪쳤다.
이때 기체에 임은 파손으로 비행기는 목적지인 소련의 「이르쿠츠크」를 멀리 남겨놓은 채 몽고에서 추락했다.
비행기 추락 잔해 근처에서는 죽은 임과 그의 아내 및 아들의 나신이 뒹굴고 있었다. 임의 왼쪽다리는 부러져 있었고 아내는 팔이 부러져 있었으며 아들은 권총을 허리에 차고있었다. 【북경 AFP·UPI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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