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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보이 이 병장, 고교 때부터 "아버지는 조폭" 거짓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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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형이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정말로 그렇게 얘기했다고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버지는 ‘조폭’이 아닙니다.”

28사단 윤모(20) 일병 구타 사망사건의 주범 이모(26) 병장의 동생(23)은 이렇게 말했다. 5일 저녁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이 병장 집에는 동생만 있었다. “어머니는 서울에 갔다”고 했다. 아들 재판 때문에 변호사 등을 만나러 간 것으로 짐작됐다.

군 복무를 마친 대학 복학생이라고 밝힌 동생은 형이 “아버지가 조폭”이라고 말하며 윤 일병 등 후임병들에게 겁을 줬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묻자 “자영업을 한다”고 답하면서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말하기 싫은 사정’이 있어 보였다. 집에는 아버지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현관에는 어른용 구두가 놓여 있지 않았고, 집 어디에도 아버지 사진은 없었다. 안방에는 1인용 크기의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50대의 이웃 남성은 “그 집에는 어머니와 아들만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서너 달 전 이사 오는 날에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병장의 대학(경남의 K대) 1년 후배 S씨는 “학교 다닐 때도 아버지가 조폭이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5년 전의 일이었다. 고교 동창 H씨도 “학교 다닐 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동생 말이 사실이라면 이 병장은 꽤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부친이 조직폭력배라고 거짓말을 해 온 것이다.

윤 일병에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악마적’ 폭력을 휘두른 이 병장의 성장 배경을 추적했다. 동생, 중학교 담임 교사, 동창, 이웃 주민 등을 만났다. 그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폭력성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신의진 새누리당 국회의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나미 서울대 의대 겸임교수,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등의 전문가에게 취재된 내용을 전해 주며 심리 분석을 부탁했다.

지난 5일 28사단 군사법정에 출석한 뒤 헌병대에 이끌려 호송되는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주범 이모(26) 병장(왼쪽 사진의 맨 오른쪽). [뉴스1]

초등생 때 학생회장 … 싸움 못하면서 센 척

소년 시절 이 병장은 ‘유별난 아이’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모범생에 속했다. 6학년 때는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중학생 때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학교(K중) 3학년 때 담임이었던 S교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교 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고교 때는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동창 H씨는 “좀 껄렁껄렁한 아이들과 자주 놀았다. 종종 싸움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일진’ 수준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특이한 점은 그가 “허세를 부렸다”고 기억하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고교 동창 J씨는 “실제로 싸움을 썩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싸움에 능한 척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대학 후배도 “아버지가 조폭이라며 ‘센 척’했다. 가끔 후배들을 한두 대씩 때리기도 했다. 실제로 힘이 세거나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바보스럽게 보일 정도로 허세를 떨었다”며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병장은 친구가 별로 없었다. 동생은 “형이 휴가 나오면 거의 집에 있으면서 나에게 놀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지에는 다른 이의 방문 흔적이 별로 없었다.

대학 후배들이 자기 안 따르자 눈물도

하지만 타인의 관심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대학 후배 S씨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기억해 냈다. “하루는 후배들에게 밥을 사 주겠다며 다가왔는데, 후배들이 다른 선배를 따라가서 밥을 얻어 먹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가 울기 시작했다.”

동생은 형을 ‘마마보이’라고 표현했다. “엄마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은 정도”라고 했다. 군에서 어머니에게 편지도 자주 썼다. 그의 ‘병영생활 지도기록부’에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어머니를 꼽은 것으로 적혀 있다. 동생은 형의 성격에 대해 “겁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윤 일병 사건 뒤 헌병대에 면회를 갔을 때는 “계속 울면서 말도 제대로 못 했다”고 했다.

가정형편은 그리 넉넉하지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그 중 아랫층에 이 병장 가족이 살고 있다. 세간살이는 평범했다. 등기상의 집주인이 제3자로 돼 있어 이 병장 가족이 임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어머니 이름으로 전세권이 설정돼 있었다. 군 기록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취재 내용을 들은 신의진 의원은 “이 병장이 인격적 미성숙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에게 과도한 애착을 보이는 것을 보면 유년기에 가족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허세를 부린다는 것은 ‘가짜 자아(false self)’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자기가 원하는 상상의 자아와 실제 자아 사이에서 혼동을 겪는 것이다. 통상 가짜 자아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면 사라지는데 어렸을 때 심리적 발달이 덜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왕따당하거나 시키기 쉬운 성격”

이나미 교수는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분명치 않지만 행동 양태를 보면 ‘아버지 부재’의 성장 과정을 겪은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 병장이 자신에 대해 말한 군 기록부에는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교수는 “남자아이들이 할아버지나 아버지, 삼촌을 통해 ‘건강한 권위’를 배우지 못하면 감정 조절을 못해 충동적 폭력성을 갖기 쉽다. 그러면서 동시에 겁이 많은 비겁함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진짜 건강하고 남자다운 남자는 좀처럼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고 했다.

배상훈 교수는 “자아 형성이 덜 돼 자존감이 낮고 자기 보호의식이 강한 것으로 판단된다. 허세를 부리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고, 그럴수록 자신을 감추기 위해 폭력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성향을 가지면 타인과 정상적인 소통을 잘 못하고,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쉽다. 스스로 ‘왕따’를 당하거나 다른 이를 ‘왕따’ 시키기 쉬운 성격”이라고 말했다.

세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요즘 이 병장과 비슷한 심리 상태를 가진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며 걱정했다. 가정·학교·또래집단에서 인성과 사회성이 정상적으로 발달해 가는 과정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의원은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이 병장을 포함한 군대폭력 문제를 일으킨 병사들의 심리를 분석해 근본적 원인을 밝혀내고 싶다. 그래야 군대폭력 문제의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차길호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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