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각광받는 곡성삼베 「돌실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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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상에는 할일없어/청삼을 깨어내고/베틀다리 네다리요/가리씨장 스와놓고/앉을때는 도리놓고/나삼을 밟아치고….』
여인네의 한이 서린 길쌈노래가 거의 10여년만에 전남곡성군석곡면죽산리 죽산마을에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화학섬유에 밀리고 가정의례 준칙에 쫓겨났던 삼베의 수요가 옛정취를 찾는사람들에 의해 되살아났기때문이다.
무형문화재32호 곡성「돌실라이」(삼베)는 한산모시와 더불어 궁중 진상품으로 손꼽히던것.
「돌실라이」 는 석곡면의 우리말 이름인 「들질」과「나온다」 는 옛말 「라이」 를 합쳐 석곡특산물 삼베를 지칭하는것.
삼베가 인기있던 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죽산리 마을건체 70가구에서는 단 하루도 베틀노래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후 「나일론」·합성에 밀려 삼베는 상복으로나 쓰이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고 73년 가정의례준칙 제정으로 굴건제복이 금지되자 그나마 자취를 감추기시작했었다.
74년 대마초파동으로 삼밭 경작자들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자 삼밭경작을 기피, 삼구하기도 어렵게 됐다.
이 마을에서는 겨우 「돌실라이」 의 기능보유자 김점순씨 (65· 여· 곡성군석곡면죽산리229)와 김씨로부텨 길쌈을 배운 조형용씨(48)등 3가구만 무형문화재 전승을 의해 길쌈을 계속할 뿐이었다.
요즘들어 인공·화학섬유에 싫증난 도시사람들이 삼베등 자연섬유를 다시 찾기시각하자 마을의 베틀을하나 둘씩 다시 끄집어내렸다.
마을전체가 「돌실라이」를 생산하던 옛같지는 않아도 30여가구가 다시 베틀의 먼지를 털고 길쌈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생계보탬은 물론 전통문화 보존이라는 긍지에 차있다.
길쌈은 여인의 눈물이 섞여야하는 고달프기짝이없는 작업이다.
이른봄 씨뿌려 음력 6월에나 거둬들인 삼을 삶고 말려 손톱으로 잘게 쪼개야한다.
삼껍질을 쪼갤때는 엄지손톰이 갈라지고 삼으로 줄을 꼴때는 삼껍질을 비벼꼬는 손바닥과 허벅지살이닳는다. 가는실을 베틀에 일일이 거느라면 눈이 아른거려 눈물마저 쏟아질 지경이다.
기능보유자 금씨는 『길쌈은 여자의 애간장이 탄다고 애삼이라 했다』고 길쌈의 어려옴을 털어놨다. 이때문에 길쌈은 삼 쪼개기·삼삼기· 잦기·익히기·매기·짜기등 7가지 과정을 거칠매마다 10여가지의 노래가 있어 길쌈 여인들은 고달품을 잊는다.
「둘실라이」 1필 (20자)을 짜는데는 울이 굵은 농포는 하루, 울이 가는 세포는 3일이 걸린다.
가격도 삼복으로 쓰이던 농포는 2만윈, 여름대서용으로 쓰이는 세포는 15만원정도에 팔려나간다.
『물레야 자새야 어리둥둥돌아라/베틀을 올려놓고 은끈을 잦아내어….』
휘영청 달밤 아래 풀벌레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죽산마을의 베틀노래는 오늘도 여인의 애환을 싣고 천년세월을 짜고 있는 것이다.<광주=이헌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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