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이재민 돕자" … 수천 명 '인해전술' 자원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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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특파원

쓰촨(四川)성 이빈(宜濱)에 사는 30대 남성 원타오가오(文韜告)는 나흘째 자동차에서 새우잠을 잤다. 자청한 일이다. 3일 윈난성 루뎬(魯甸)현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진앙지 룽터우산(龍頭山)으로 향한 것이다. 그가 소속된 봉사단체 ‘이빈의공(義工)’ 동료 20명과 함께였다. 그들은 생수 1300병과 먹거리·담요·의약품을 단전·단수의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이재민들에게 나눠줬다. 원타오가오는 “비바람을 피할 자동차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더 이런 고생을 감수할 작정이다. 봉사자들은 모두 다 “잉가이더(應該的)”라고 말했다. ‘마땅히 할 일을 할 뿐’이란 뜻이다.

 하루아침에 가족과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 그들을 위해 밥을 짓고,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 구호 물자를 나르는 건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봉사 단체의 일원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룽터우산에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들이 1만여명의 군인·공무원과 어울려 구조와 복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중국식 ‘인해전술’은 재난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다. 리치(李岐) 자오퉁(昭通)시 문명반장은 “등록한 사람만 1500명 이상인데, 실제론 그보다 몇 배의 인원이 전국 각지에서 왔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했다. 의약업체 광야오(廣藥)는 건강음료 200만 상자와 의약품을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 보냈다. 우유 업체와 생수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윈난성 곳곳에는 ‘지진과 싸우고 재난을 구제하자. 사람마다 할 일이 있다(抗震求災 人人有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재민들이 마냥 절망에만 빠져있는 건 아니다. 전 중국을 감동시킨 사진 한 장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어린 딸이 망연자실한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을 포착한 이 사진은 ‘슬픔을 딛고 반드시 일어서자’는 메시지를 그 어떤 지도자의 말보다 강하게 전하고 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2명의 임신부가 임시 천막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룽터우산에선 5일 오후 시신을 뒤늦게 운구하는 의식이 있었다. 주민 모두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넋잃고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이재민은 “산 사람은 산 사람 몫이 있잖아요”라고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폐허의 현장에서도 희망은 싹트고 있었다. 흙더미 속에 묻혀 있다 기적적으로 구조된 생존자들은 이재민은 물론 전 중국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고 있다. 차오자(巧家)현에선 노부부가 매몰된 다섯 살 손녀가 다칠까 봐 피를 흘려가며 맨손으로 흙더미를 긁어낸 끝에 손녀를 구해 화제가 됐다. 50시간 넘게 잔해 밑에 깔려 있던 88세 노인이 구조대원들의 6시간 사투 끝에 구출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6일 사망 589명, 실종 9명이라고 밝혔다. 전날의 희생자 규모(사망 410명, 실종 12명)에서 200명 가까이 급증했다. 소규모 벽지 촌락 상당수가 마을 전체가 매몰되는 수준의 피해를 입었지만 교통·통신 두절로 뒤늦게 피해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당국은 설명했다. 부상자는 2401명, 이재민은 108만8400명이라고 덧붙였다.

룽터우산=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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