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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의 논리적 빈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한 적십자사의 이호총재는 지난12일 북한 적십자사 위원장 앞으로 친서를 보내 남북 적십자 본 회담을 무조건 재개하자고 요구했다.
이총재의 서한은 또 지난1월 북측에 억류된 우리어선「해왕 제6, 7호」와 9월8일 북측에 예인된「남진호」어부들의 조속한 송환을 의해 북한적십자사의 각별한 협력이 있기를 요망했다.
우리측 적십자사의 이러한 제의와 요망은 이산가족 재회라는 5천만민족의 피맺힌 절규를 대변한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내외의 여망을 반영한 것이다.
9년 전 8월12일 우리측 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한 것은 분단30년 최대의 비극인「천륜의 단절」을 우선적으로 덜어 주자는데에 그 의도가 있는 것이었다. 정치의 차원에서는 그 어떤 불가피한 곡절이 있어 분단이 지속되고있더라도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의 고통과 한만은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고 방치할 필요도 없는 것이기에, 우리의 가족 찾기 제의는 전 민족의 환호와 세계의 갈채를 받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부풀었던 기대는 북한측의 까닭 없는 트집과 태도변화로 한순간의 꿈으로 그쳐버리고 말았다.
북한측은 본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던 무렵 갑자기 전술을 바꾸어 이쪽의 반공법·국가보안법 질서를 변경하지 않으면 회담을 진척시킬 수 없다는 식의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한 적십자사와 또 한 적십자사가 세계적으로 공인된 적십자사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는데 있어 그 한쪽내부의 법질서 여하가 무엇 때문에 문제가 되고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적십자사의 활동이란 기본적으로 초 정치적이고 긴급구호 적인 인도주의 사항이기 때문에 정치나 사회체제나 특정분쟁사항이 그것을 제약하지 않으며, 그런 초연성이 인정되는 까닭에 적십자 활동의 성립근거가 있고 의의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각국의 법규나 체제나 분쟁사항을 일일이 회담진척의 전제조건으로 삼기 시작한다면「나이팅게일」정신의 숭고한 사업들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고 국제적십자사 자체가 간판을 내려야할 사태에 이르는 것이다.
북한측은 그 이후에 와서도 우리측 내부의 특정 정치사안을 구실 삼아 적십자 본 회담을 갑자기 외면하고 끝내는 실무접촉과 직통전화마저 일방적으로 단절함으로써 모처럼 부풀었던 민족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이다.
이것은 적십자 활동과 정치를 연결해선 안 된다고 하는 일반적인 사리에도 위배되고, 남북접촉석상에서 우리측 내부사정에 이러니 저러니 시비를 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 우리의 결의에도 충돌하는 것이며, 정치여하에 상관없이 이산가족의 즉각적인 재회를 주선하라는 5천만 겨레의 비원을 전면적으로 거역하는 행위이다.
북한축의 이런 태도는 한민족 전체의 분노를 샀음은 물론, 세계의 여론도 북한측의 논리에 닿지 않는 궤변과 억지에 조소를 보내게 되었다. 미국의「솔라즈」하원의원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이『남한의 반공법 철폐를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겠다』운운했다는 소식은 바로 그런 국제적 비난에 대한 하나의 편이 적인 임기응변이 아니었나 추측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북한측의 논가의 빈곤을 스스로 자인한 것인 이상 북적은 더 이상 쓸데없는 궤변과 무리를 고집하지 말고 우리측의『10월28일 서울에서의 본 회담 재문』제의를 즉각 받아들여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북한측은 중추 가절의 민족적인 명절을 맞아 해왕호와 남진호의 승무원과 어부들로 하여금 이날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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