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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풍어… 동해안 어항들 흥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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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변가 얕은 언덕에 오징어 덕장이 줄지어 서있다.
이른 새벽 만선을 이룬 오징어배에서 내려져 배를 가르고 바닷물에 씻어낸 싱싱한 오징어가 새끼줄에 매여 한낮의 햇볕에 붉게 빛난다.
「철썩」. 파도에 씻겨오는 싱그러운 해풍을 맞으며 오징어 덕장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아낙네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동해안 오징어잡이가 10년만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속초앞 바다가 불야성을 이룬다. 지난3월 일본 「쓰시마」(대마)와 제주해역에서부터 시작된 오징어 풍년은 동해북부연안으로까지 북상, 7월 중순부터 18일 현재 모두 1만4천1백29t의 어획을 올려 대풍을 이루고 있다.
작년 같은 기간 어획고 7천6백10t에 비하면 이미 2배가 넘었다.

<하루 1인당 8천원>
오징어잡이 최성기는 9월부더 11월 사이. 앞으로도 많은 어획을 예상할 수 있다. 4만t은 무난히 넘을 것이라는 수산당국의 전망이다.
어부들의 검붉은 얼굴에서도 오랜만에 수심이 가셨다. 이같은 풍어에 동해안 5백32척의 어선이 오징어잡이에 나섰다. 최근 4∼5년간 아예 출어를 포기하고 항내에 닻을 내렸던 소형어선들(10t미만)도 다시 어구를 챙겼다. 주문진·강릉항에서도 출어에 한창이다.
속초항의 승해호(19t·선주 백주해·48)등 소형어선들은 연안오징어잡이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있다.
모처럼 연안오징어잡이로 선수를 돌렸다는 속초항소속 영건호(18t)의 선주 이영택씨(56·속초시 중앙동12의 2)는 『하룻밤 조업에 1백∼1백50급(1급=20마리)를 잡아 유류(2「드럼」) 전구 등 경비 5만원을 제하고 선원 한 사람이 7천∼8천원씩 벌고있다』고 말했다.
원해쪽 대화퇴출어도 만선을 이루고있다. 1항차(10∼15일) 조업에 유류60「드럼」, 얼음25t 등 출어경비가 2백70만원에서 3백50만원까지 들어가지만 척당 평균1천5백급을 잡아 선주에게 1백만원, 선장·기관장에게 30만원씩, 일반 어부들도 10만∼l6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속초수협소속 협동호(50t)는 지난 10일 l항차 조업에 2천8백급(싯가1천3백만원)을 잡아 만선으로 귀항했다.
이같은 기쁨 속에서도 어부들을 섭섭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낮기만 한 오징어 값.
동해안오징어값은 지난해 1㎏에 9백∼1천1백원이었는데 올해 오징어값도 1㎏에 9백원. 유류값·어구값은 크게 올랐는데 고기값은 그대로다.

<알맞은 수온 형성>
오징어 잡이의 위험도를 안다면 어부들의 소리를 짐작할 수 있다. 어장은 70년대초 연안에서 울릉도 쪽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울릉도와 독도로, 그리고 최근 3∼4년 사이엔 독도에서 2백㎞떨어진 대화퇴로까지 멀어지고 있다. 먼바다로 갈수록 바다는 거칠고 조난위험이 많다.
지난 78년10월 대화퇴에 갔던 어선 17척의 어부 2백25명이 조난 당하는 등 비싼 댓가도 치렀지만 생명과 재산을 걸고 잡아온 고기값이 낮기만 하니 안타깝다.
올해 오징어가 풍어를 이루고 있는 것은 연안10「마일」해역과 원해의 대화퇴 어장에 어장 형성에 좋은 조건이 되고있는 수온전선이 형성되었기 때문.
수산진흥원에 따르면「오흐츠크」에서 발생한 「리만」한류가 일맥은 대화퇴해역에서 일본남단 태평양에서 발생한 「구로시오」난류와 만나고 다른 일맥은 동해연안 10「마일」안쪽을 따라 세차게 남하하여 북상해 오는 난류와 연안에서 교차하여 경계수역에 수온전선이 생겼다.
이같은 여건으로 대화퇴에서 동해연안의 거진∼삼척간에 오징어떼가 몰렸다는 것.
수산진흥원은 앞으로도 4∼5년간은 이같은 해류가 예상되어 오징어가 계속 잡힐 것으로 낙관했다.
오징어잡이는 60년대초가 최성기로 63년에는 최고 11만6천t을 잡기도 했다.

<단백질 등 영양풍부>
그러나 그후 어획량이 줄어들어 동해안에서는 65년 3만8천2백36t, 70년 4만3천66t으로 증가하는 듯 했다가 75년 1만8천89t, 78년 l만8백89t 등으로 해마다 어획량이 격감됐다.
지난 10여년간 오징어잡이가 흉어를 겪으면서 오징어잡이 풍속도도 많은 변천을 겪었다.
잇단 원해조난사고로 10t이하 어선은 발목이 잡혀서 오징어잡이를 단념해야했다.
또 오징어 철이면 항·포구마다 빽빽하던 오징어덕장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가자 황금기를 구가하던 포구의 선술집도 함께 문을 닫는 비운을 맛보았다.
항구에 가득 찼던 오징어냄새도 옛 얘기로 변했고 『개도 천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며 풍성이던 어촌모습도 사라졌다.
이처럼 황폐했던 어촌이기에 오징어풍년은 더욱 감격을 안겨주고 있다.
속초∼주문진사이 바다에는 밤이면 휘황한 오징어잡이 불빛이 명멸하고 어촌 해변과 골목에는 어느새 오징어 말리는 덕장이 들어섰다.
오징어 항구 속초에는 품을 팔러온 낮선 사람들이 늘어나고 곳곳에 선술집 문이 다시 열렸다.
60년대의 향수가 현실로 재현된 풍경이다.
오징어는 단백질의 보고.
1백g중 67.5g이 단백질로 쇠고기의 20.19보다 3배나 많다.
열량도 쇠고기의 2.5배. 무기질과 「칼슘」이 많이 함유되고 「비타민」B1, B2도 포함되어있다.
의학계에서 최근 간장병·성인병 등에 오징어를 섭취하라고 권하고 있을 만큼 고단백 식품이다.
어부들도 먹기 힘들던 오징어가 풍어따라 각종 요리도 개발돼 요즘 동해안에서는 오징어순대가 인기다. 오징어물회·오짐어백반집들도 다투어 들어선다. 『오징어 풍어』-. 인간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풍어가 계속되길 기원하는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글 장창영 기자 사진 채흥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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