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차려 11억 뒷돈 챙긴 연구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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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 사업팀이 있다. 구글 글라스나 키 없이 시동을 걸 수 있는 자동차 스마트 키처럼 여러 전자기기(사물)와 각종 데이터를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차세대 정보기술(IT)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팀이다. 이 팀의 책임 연구원 김모(38)씨는 지난해 무선주파수인식기술 관련 사업을 민간에 발주했다. 김씨는 민간업체인 E사가 주관업체로 선정되도록 힘을 썼다. 사업계획서에 장비 비용과 용역비를 부풀려 썼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E사 성모(42) 영업본부장과 김씨가 서로 짜고 친 고스톱이었기 때문이다. 주관업체로 선정된 E사는 정부 출연금으로 13억4000만원을 받아 이중 2억원을 김씨에게 건넸다. 또 9억4000만원은 자사 공장 증축에 썼다. 결국 사물인터넷 사업에 들어간 건 2억원뿐이었다.

 두 사람이 빼돌린 돈은 NIPA가 사물인터넷 기술 확산을 위해 2008년부터 민간업체에 매년 지원하는 자금 150억원 중 일부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문홍성)는 3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공공기관 정부출연금 관련 비리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책임연구원 김씨는 E사에서만 돈을 챙긴 게 아니었다. 그는 다른 업체 4곳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 모두 합쳐 11억1000만원을 챙겼다.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으려고 친척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뇌물을 받았고 의심을 피하려 세금도 납부했다. 그는 NIPA 출연금을 받은 업체에 하청업체를 소개해 주고 수고비조로 55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같은 팀 수석연구원 선모(40)씨는 김씨를 돕거나 비리를 묵인하고 1년간 1억4000만원을 벌었다. 인천정보산업진흥원의 이모(39) IT융합진흥부장은 이들과 함께 협회비 명목으로 업체에서 총 2억9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연구원은 챙긴 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거나 해외 골프여행을 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 3명은 뇌물수수 혐의로, E사의 성 본부장 등 업체 관계자 6명은 뇌물공여,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문 부장검사는 “공공기관 연구원들이 주관기관 선정에서부터 하청업체 선정까지 단계별로 개입해 정부출연금의 횡령을 묵인하고 뇌물을 받는 새로운 형태의 비리”라고 밝혔다.

 검찰은 미래부 산하 다른 공공기관 연구원들의 금품수수 혐의도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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