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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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유대인의 역사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다. 디아스포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분산' '이산'을 뜻하는데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의 고향인 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살아야 했던 운명을 통칭한다.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정복으로 시작된 얘기니까 2천7백여년의 뿌리를 가진 말이다.

디아스포라된 고대 유대인들이 제2의 고향 삼아 모여든 곳은 당대의 국제항 알렉산드리아였다. 이들은 주로 지중해를 이용한 무역과 수공업에 종사해 그리스계 원주민이나 팔레스타인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동족들보다 훨씬 윤택한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당연히 주변의 질시도 적지 않아 반(反)시오니즘(Zionism) 폭동이 그때부터 나타났다.

19세기 이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일관되게 모여든 보금자리는 미국이다. 2천년에 걸쳐 유럽대륙에 퍼져 살던 유대인들은 박해가 있을 때마다 대서양을 건넜다. 가장 큰 집단이주는 독일에 거주하던 유대인이다. 이들은 19세기 초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퇴하면서 독일 제정의 폭압이 예상되자 신대륙으로 향했다.

당시 이동한 독일지역 출신 유대인이 약 30만명. 이후 동유럽.러시아 지역 유대인도 뒤따랐다. 이들을 따로 아슈케나지(Ashkenazi)라고 부른다. 미국 내 유대계의 80% 이상이 아슈케나지의 피를 잇고 있다.

또 한번의 대이동은 나치의 등장에 따라 20세기 초반에 일어났다. 이때엔 특히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고급 인력이 대거 몰려갔다. 이들은 미국이란 나라를 지렛대 삼아 세계의 흐름을 선도해왔다고 평가된다. 금융과 기초과학은 물론 문학과 공연예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2천년 전 조상들의 능력을 이어온 셈이다.

미국 내 정상급 부호의 20%,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7.5%, 주요 일간지 필진의 35%, 영화 제작자.감독의 60%가 유대인이다. 이라크 전쟁을 지휘한 매파 중의 매파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담당관, 그리고 대통령의 입을 대신하는 애리 플라이셔 대변인도 유대인이다. 미국이 '제2의 가나안'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다(박재선 지음, '제2의 가나안-유대인의 미국').

최근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라크 전쟁의 최종 마무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해소 여부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유대인을 설득하는 것은 전쟁보다 복잡하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