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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니 8m56㎝ 장쾌한 풍경 … 빨려들 것 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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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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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쌍벽을 이뤘던 궁중화원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위 큰 그림)와 세부도(아래).

어둑한 저 편 너머로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이름 하여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8m56㎝에 걸친 장쾌한 산수는 잠시 현실을 잊고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넘친다. 끝없이 펼쳐지는 위엄서린 땅과 그 위에서 살아가는 백성의 모습이 꿈틀꿈틀 기기묘묘한 화필로 보는 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좋다’ 추임새가 흉금에서 절로 터질 만큼 쾌하다.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29일 개막한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에 출품된 한·중·일 정통 산수화 중 단연 으뜸이랄까. 밖은 한여름 폭염인데 이 작품 앞에 서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다 제쳐두고 이 한 점만 봐도 좋은 전시다. 명품의 힘이다.

 ‘강산무진도’를 그린 이인문(1745~1824 이후)은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진 단원(檀園) 김홍도와 쌍벽을 이뤘던 궁중화원이었다. 호가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으로 정조(正祖)·순조(純祖) 연간에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 사상에 충실한 작품을 남겼다. 당대에 유행했던 진경산수나 풍속화와 거리를 두고 전통을 중시하는 상고적(尙古的) 성향에 쏠렸다. 특히 다양한 구도 실험과 정치한 세필(細筆)이 놀랍다. 3년 만에 전 폭을 펼친 ‘강산무진도’를 완상하려면 돋보기로 꼼꼼히 살피는 것이 좋다.

 ‘강산무진도’를 해석하는 길은 여럿이지만 그 중 하나는 그의 호와 연관 짓는 것이다. 고송, 즉 오래된 소나무에서 시작해 흐르는 물, 유수로 마무리된다. 따라서 이 산수화는 노년에 이른 이인문 자신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절한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2005)은 군주의 통치대상인 국토와 백성이 영원하다는 것, 곧 왕조가 무궁하리라는 것을 조형적으로 표출했다고 풀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정통 산수화를 한자리에 모아 모처럼 눈이 호사하는 특별전이다. ‘청정한 세계, 산수’ ‘천하절경의 이상화, 소상팔경’ ‘현인들이 노닐던 아홉 굽이, 무이구곡’ 등 7개 주제로 나눠 109점 푸짐한 명품의 향연이 펼쳐진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주머니 얄팍한 이들에겐 동아시아 삼국의 산천을 주유하는 하루 피서로 알뜰하다. 주요 전시품을 골라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오디오 가이드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8월 20일과 9월 3일 오후 2시 소강당에서 전시 연계 강연회가 열린다. 02-2077-900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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