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성폭행 피해자들 진술, 수사 단계선 의심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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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성폭력 범죄에 엄격한 독일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배려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난다. 먼저 경찰과 검찰은 피해자의 진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수사에 임한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수사 기관이 피해자를 불신할 경우 훨씬 큰 폐해가 생긴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볼커 쿠겐 본 형사법원 부장판사는 “증언이 진실인지를 밝히는 것은 온전히 법원의 몫”이라며 “수사 단계에서부터 성폭력 피해자를 압박해 도움 될 게 없다”고 말했다.

 법정에서는 더 철저하다. 가해자측 변호인은 피해자에게 직접 질문을 할 수가 없다. 판사를 통해서만 물어야 한다. 프랭크 여성폭력 전문 변호사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사전에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피해자는 검사와 함께 가해자에게 직접 질문을 할 수 있다. 중범죄에 한해서다. 피해자가 아동일 경우 판사는 판사석에서 내려와 아동의 눈높이에서 질문을 해야 한다. 볼커 쿠겐 본 형사법원 부장판사는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 아동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작은 배려들이 아이들의 불안을 많이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신상 정보는 철저히 가려진다. 지난해 독일 본에서는 삼촌이 두 명의 어린 조카에게 약물을 먹인 뒤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백 명의 취재진이 작은 마을로 모여들었지만 수사 당국이 철저히 통제한 결과 피해자 신상 정보가 끝내 밖으로 새지 않았다.

 당시 어린 자매의 상담을 맡았던 클라우스 여성폭력상담사는 “경찰의 통제가 시작되자 취재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도 언론사들이 잘 협조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본=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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